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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지(알면 쓸만한 신박한 지혜)

#3-5. 부적-符籍의 진실

by 느티나무곽교수 2023. 8. 7.

[부적-符籍의 진실]

[오늘날처럼 과학기술이 체계화되지 못했던 옛날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에 의존하고, 때로는 기복신앙에 바탕을 둔 무속신앙에 의존하는 풍습이 있었다. 집안에 액운을 막아준다 하여 부적을 그려서 사람이 들고 나는 문설주에 붙이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둔 자녀에게 부적을 만들어 옷 속에 또는 잠잘 때 베고 자는 베갯 속에 넣어두는 풍속들은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과연 미신일까 과학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1. 부적의 유래와 용도

 1-1. 부적의 유래

어문각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에 따르면 '못된 귀신을 쫓고 재앙을 물리친다고 하여 붉은 먹으로 불가나 도가에서 쓰는 괴상한 끌씨를 적은 종이'라고 부적의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민간신앙으로서 불교나 도교 등을 믿는 집에서 잡신을 쫒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라고 정의하며 신부-神符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든 집안일이든 큰 일을 앞두고 보면 사람의 심리가 안정이 안되고 들뜨기 마련이며,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한 경우 극도로 심신이 불안하여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평상심-平常心을 찾아 성공적으로 일을 치르게 하자는 데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겠다.

 1-2. 부적의 용도

어떤 정의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공통적인 점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기운을 막아내기 위하여 종이에 붉은색 도료를 이용하여 일반인이 알아보기 어려운 그림이나 글씨를 그려서 몸에 지니고 있거나 잠을 잘 때 베고 자는 베갯 속에 넣거나, 가족들이 수시로 들고나는 방문의 문설주나 머리 위에 붙여 두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집안의 큰 행사나, 입시를 앞둔 자녀들이나, 승진 시험을 앞둔 가장처럼 큰일을 앞두고 정신적으로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거나, 불안한 사람에게 안정을 찾아 평상심을 가지고 일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방편으로 부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거나 가까이에 두었다는 점이다. 미신인지 과학인지의 여부는 우선 접어두자.

2. 부적의 제조방법

 2-1. 부적의 주요 재료

전통적인 부적을 만드는 종이는 '괴황지'라고 하는 약간 노란빛을 띠는 특수한 종이를 사용하는데, 이 종이가 없다면 노란빛이 나는 창호지를 쓰고 이것도 없을 경우에는 바탕이 노란 깨끗한 종이를 사용했다. 대부분 이렇게 종이에 만들었지만 종이가 없을 때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돌, 나무, 청동, 대나무 같은 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나무부적 중에는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나 대추나무 부적을 으뜸으로 치는 경향도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재료들이 상서로운 기운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도 벽조목이라 하여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다듬어 도장을 만들고, 도장의 중간에 홈을 파서 주사를 채워 넣고 이 도장을 몸에 지니면 사기-邪氣를 물리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괴황지를 만드는 방법은 음력 7월 7일 괴화-槐花, 즉 회화나무의 꽃을 따서 말린 후 칠월 칠석 이후 첫 번째 뱀날이나 경신-庚申일에 우물물에 담가 우려낸 물에 닥나무로 만든 창호지를 담갔다가 건져서 말리는 작업을 9번 반복하여 만든다. 이렇게 준비한 종이에 특수 제작된 도료를 가지고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는데, 이때 사용하는 도료는 온시라향,  배초향, 백지향-白芷香, 현정석-玄精石, 금정석-金精石, 은정석-銀精石, 졸패라향, 자단향-紫檀香, 강진향-降眞香, 사향-麝香, 경면주사를 각각 등분하여 미세한 가루로 분말-粉沫한다. 이때 분말을 할 때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연석-硏石을 사용하여 미세한 분말로 만든다. 이것을 참기름이나 녹각교 또는 용뇌 같은 것을 첨가하여 서예를 할 때 사용하는 먹물처럼 걸쭉한 도료를 만든다. 그림을 그려 넣는 붓은 어느 붓이나 상관없지만, 미세한 표현을 필요로 하는 그림의 경우 쥐-mouse의 수염을 뽑아 만든 붓을 썼다고 한다. 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이라 하면 조금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나, 유명한 조선시대의 선비화가 공재(恭齋) 윤두서의 자화상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릅뜬 눈과 한올 한 올 살아 움직이는 듯, 극 사실화 기법으로 그린 모발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사용한 붓이 바로 이런 붓이었다.

주사-중국
주사-중국

 2-2. 부적을 그리는 방법

도교의 전통에 따르면 "부적을 만들 때는 기도드릴 제단을 만들고  2주일간 부정한 것을 보지도 먹지도 말고 몸과 마음을 잘 가다듬고 매일 냉수로 목욕 후 갑-일이나 기-일의 자시-子時 즉 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시작한다. 옷을 단정하게 갖추고 향-香을 사르며 주문을 외우고 제단에 삼색과일과 차- 그리고 칠품명향-七品名香으로 분향한 뒤 밖으로 나가서 동서남북으로 절을 한 뒤 제단에 3번 절을 한다. 그런 후에 각 선신-仙神을 청하는 청신주와 소원성취 축원과 안위신주, 정법계진언, 호신진언, 육자대명왕진언을 각각 33번 하고 부적을 그린다. 부적을 그린 후 세 번 절을 하고 보회향진언을 세 번 외우고 다시 밖으로 나가 동서남북에 큰절을 1배씩 올리고 제단으로 들어와 제단을 정리한다. 부적을 보관할 때는 반드시 칠품명향에 싸서 보관하였다가 사용한다."라고 되어있다. 꽤나 복잡한 절차를 밟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자시-子時에 행하는 것은 만물이 잠든 밤에 정신을 집중하여 만든다는 의미도 있겠고, 값비싼 재료들의 분말이 날리지 않는, 즉 공기가 잠잠한 시간을 이용한다는 의미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3. 독성 약재 주사의 실체

 3-1. 동의학적 기초이론(양심안신약재와 진심안신약재)

동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오장육부 중에서 심장-心으로 보았다. 따라서 정신이 불안한 원인은 심장의 기능이 허약하거나, 지나치게 항진-亢進된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흔히 심허-心虛라고 불리는 전자의 경우에는 허약한 심의 기운을 강하게 길러주는 양심-養心 작용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심이 불안하여 항진된 후자의 경우에는 항진된 심의 기능을 강하게 눌러 평상심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진심-鎭心작용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독성이 있는 약재를 적당한 가공 방법을 통하여 치료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3-2. 안신-安神 약재의 종류

동의학에서는 이처럼 평상심을 찾도록 도와주는 약재들을 안신약재-安神藥材라고 부른다. 그런데 부적에 사용되는 주사를 비롯한 대다수의 광물성 약재들은 진심안신-鎭心安神하는 기능을 가진 약재들인데, 그 독성이 너무 강하여 직접 그 약재를 들이켜거나 먹을 수 없다. 따라서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을 하여 그 독성을 낮추고, 직접 신체의 피부에 닿거나, 복용을 하는 방법을 피하고, 치명적 독성이 없을 정도의 간접적 방법으로 그 기운을 접촉하도록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상심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4. 주사의 생산과 가공방법

주사 광산에서 캐내는 주사-朱砂는 황화수은-HgS을 주성분으로 이루어지는데, 가공하지 않은 주사를 오랫동안 사용할 경우 수은중독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비-水飛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가공을 하게 된다. 먼저 항아리에 깨끗한 물을 가득 채우고, 연석에서 물을 약간 가미하면서 먹물처럼 곱게 간 주사를 항아리 물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 현탁액을 만들고, 며칠씩 안정시켜 현탁액이 가라앉으면 위에 물은 비우고 아래 가라앉은 주사만 건져내어 다시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여 독성이 제거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렇게 독성을 제거한 주사는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5. 마무리

문맹률이 높았던 고대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유용한 안신약재였던 주사를 부작용 없이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부적이라는 다소 신비감과 경외심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하였던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경우이다. 문설주에 붙여서 서서히 비산하는 주사의 성분을 맡는다거나, 베개 속이나 몸에 지녀 조금씩 흡수시키는 방법을 씀으로써 인체에 부작용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큰 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에서다. 다만, 그야말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금품 착취를 노린다거나, 혹세무민 하는 행위는 금해야 할 일이다. 부적한 장 그려주고 수백만 원씩을 요구하는 행위를 한다면 분명 지나치다. 그건 사기에 다름 아닌 미신이다. 재료값에 붓놀림 값으로 그저 몇천 원 더한 값이면 적당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