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무슨 일이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당 수의 언론들이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거론하면 '대학이 변해야 한다', '대학의 줄 세우기를 없애야 한다', '대학의 입시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등등의 말들을 하다가 또다시 잠잠해진다. 보다 근본적으로 "어떻게-How"라는 방법론도 등장하지만 대부분 보면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없다.
1. 한국의 대학교육 이대로 좋은가?
얼마 전 강남의 학원가에 이상한 현수막이 걸려 실소하다 못해 한숨을 쉬게 한적이 있다. 그 내용인즉 '의대에 보내려면 수학이 중요한데, 수학교육의 분수령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결정이 된다. 그러니 초등학교 4학에서 5학년에 해당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 입시 준비반을 모집한다.' 이런 거였다.
1-1. 대학의 줄 세우기
필자는 소위 '예비고사' 세대다. 대략 100만여 명에 달하는 대입 수험생이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르고, 그중에서 대학입시 정원의 2 배수에 달하는 50만 명 정도를 합격시킨 다음 이 사람들이 다시 지원하는 학교마다 '본고사'를 치러서 당락을 결정하는 제도였다. 군대를 다녀와서 뒤늦게 복학을 하고, 몇 번인가 또 입시 제도가 바뀌고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수능세대에 이르렀다. 필자가 대학 입시를 치를 때만 해도 암묵적인 공식이 있었다. 예비고사 전국수석, 문과수석, 이과수석, 이런 게 언론에 발표되었고, 전국 수석을 한 학생은 어김없이 공중파 방송에 나와서, 그리고 주요 신문의 인터뷰 기사로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교 수업에 만 집중했다"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도 문과 전국 수석은 어김없이 서울에 있는 S대학교의 법학과에 진학을 하였지만, 이과는 오늘날 과는 조금 달랐다. "예비고사 전국수석-서울 S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이것이 공식이었다. 매년 입시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주요 신문의 사회면은 서울 S대학교의 합격자를 낸 전국의 고등학교 명단을 주요 기사로 다루었고, 모든 고등학교의 교사들은 여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였다.
1-2. 전 국민이 의대에 목숨 거는 나라
그러다가 1970년대 초반이 되면서 공대의 위세가 조금씩 높아지더니 물리학과보다는 전자공학과가 공식을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공업입국의 기치를 건 정부 정책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공과대학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특히 지방 소재의 고등학교일수록 그리고 학생의 가정형편이 어려울수록 이러한 현상은 조금 더 두드려졌지만, 결과론적으로 이러한 공대 선호 현상은 80~90년대를 거쳐 본격적으로 첨단 산업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국가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의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본다면 상상이 안 되는 현상일 것이다. 우스운 말로 독도에 있어도 의대라면 간다는 세상이고 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2. 대학입시에 얽힌 추억 하나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난다. 어느 학교나 그런 인물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학교에도 탁월한 선배가 한분 있었다. 그는 3년 동안 단 한 번도 1등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고, 그것도 2등과는 탁월한 점수차로 1등을 유지하면서 소위 말하는 모든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S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차석으로 합격한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3학년이 되던 겨울 어느 날 그 선배의 놀라운 소식이 전해왔다. 당시 지방 일간지에 그 지방 소재의 국립대학에 그 선배가 수석합격자로 소개되었다. 그것도 법학과였다. 몇 단계를 거쳐 확인한 결과 같은 인물이었고, 며칠 후 모교 선생님 들께 인사차 들른 그 선배를 동아리 활동을 함께했던 몇몇 선후배들이 함께 만난 자리에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결국 S대학교 입학 숫자가 중요했고, 전자공학과라는 타이틀이 중요했지. 학생의 적성이나 진로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진학지도의 문제였어. 너희들은 절대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아무리 노력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하는 수 없었어. 결국 자퇴를 하고 다시 시험준비를 했지." 그 후로 그 선배를 몇 차례 만났고, 그때마다 하는 말이 "대학생활이 너무 재미있다"였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요 철학의 문제였다.
3. 대학입시에 얽힌 추억 둘
필자는 군대를 다녀와서 정말 늦게 대학을 다녔다. 처음 입학한 대학은 원래 내가 목표했던 대학도 아니었고, 재수까지 했는데도 목표했던 대학을 가지 못한 상황에서 아예 포기를 하고 군 입대를 준비 중이었는데, '일단 학적은 두고 가야 하지 않겠냐?' 하시며 입학 수속을 해 주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후기시험을 치르고 3년의 군복무를 마쳤다. 뒤늦게 복학 수속을 하고 첫 여름방학이 되어 입주 과외를 하던 집에 며칠 휴가를 얻어 시골집에 돌아오니 당시 고향집 시골에 있는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막네 동생이 '형이 아버지한테 말 좀 잘해서 나 전학 좀 시켜 줘.'하고 워낙 진지하게 부탁을 하여 그 사정을 들어보니, 6남매의 막네를 도회지로 내보내지 않고 곁에 두고 싶어 하신 부모님의 애틋하신 뜻에 따라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시골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전교 1등, 적당히 해도 1등이라 진짜 내 실력을 판단할 수 없어서 그러니 좀 큰 물에 가서 한번 제대로 겨뤄보고 싶다'는 것이 요지였다. 기특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서 하루는 날 잡아서 진지하게 부모님께 상의 말씀을 드렸고, 결국은 승낙을 받았다. 2학기에 전학 수속을 하고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 거둔 성적은 전교 23등. 교재도 다르고, 진도도 다르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동생은 열심히 공부를 했고, 2학년이 되면서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늘 1~2등을 다투었다. 시간 날 때마다 동생과 대화를 나누며 '장차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 3학년이 되고 입시철이 되자 당시 대학원을 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동생들의 가장 노릇을 하고 있던 나에게 담임 선생님과 진학지도 담당교사로부터 몇 차례 연락이 와서 면담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동생의 의지를 확실하게 전했다. 선생님들 말씀의 요지는 그랬다. "지금 얘 성적이면 S대학교 자연대학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학교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결단을 내려달라. 학교 차원에서 입학금은 장학금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결국 "입학 후 서울에서의 생활비까지 학교에서 대 주나요? 동생은 S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한것이 아니라 의사가 꿈이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J대학을 지망하는 겁니다" 하고 결론을 맺었다. 이제 그 동생이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지금 생각해도 그 때 그 결정은 참 잘했다는 것이다.
4. 대안은 없는가?
중요한 점은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이다. 결국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재 한국에서 의대를 갈 만한 학생이라면 누가 보아도 최 상위 그룹의 우수인력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의과대학의 공부가 결코 만만하지 않고, 의사가 되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입학에서 독립적 개원을 하기까지 15년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개원을 하고는 특정분야의 전문의가 되어 하루종일 반복적인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을 보면, 이건 타고나야 하는 천직-天職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상위 1% 이상의 우수한 두뇌와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하기에는 좀 아쉬움이 남는 직종이라는 것이 필자를 포함한 상당수 교육자들의 의견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보다 우수한 인력들이 보다 창의적이고, 다중의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첨단 과학이나 공학분야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한다. 문제는 그 토양이 너무 척박하다는 것이 문제다. 상당수의 우수한 인력들이 해외 유학을 하고,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을 하지 않고 그나라에 일자리를 찾는 현실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4-1. 오바마 대통령의 인터뷰 행간 들여다보기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NBC 방송사의 'Today Show'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I think it's fascinating because when I visited Korea, they actually showed me how they teach math and science and how kids have to learn three years of English before they even start high school, "Obama said. "So we're starting to see some countries that are recognizing the value of education -- not just for the sake of educating their kids but also for economic development."
이걸 소개하면서 많은 언론들이 한국의 우수한 교육시스템을 본받아야 한다고 대서특필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수학과 과학교육 방식 및 영어교육 등을 참고하면서 미국도학생들에게 좀 더 집중적인 교육 시스템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한다면 문제 풀기 요령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한국의 수학교육이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4-2. 입학성적이 우수한 한국인 유학생
얼마 전에 소위말하는 미국의 유명대학으로 불리는 동부지역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는 한국인 교수로부터 들은 얘기다. "한국인 유학생들의 수학-數學 성적을 보면 입학성적은 최상위인데 입학 후에는 평균치 이하로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 지금처럼 공식과 문제 풀기 요령만을 가르치는 학교교육과 학원교육으로는 그들을 능가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5. 누구나 4차 산업을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을 얘기한다. 그러나 진정한 4차산업의 속성을 알고 말하는 것일까?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 4차산업을 생각하거든 Chat-GPT 이후를 생각하라고. "초고도정보화사회"에서는 인간의 일자리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컴퓨터가 그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사람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수십 년 전부터 말해 오던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이 이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6. 마무리
지금처럼 많은 대학이 과연 필요할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국 정도의 나라라면 각 시도에 대학 하나정도면 충분하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많은 대학이 꼭 필요한가 말이다. 각 시도에 하나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국공립화 해서 은퇴 후를 준비하는 인생 2 모작 대학으로 바꾸자. 우리가 인생 1 모작을 살기 위해 보통 30년을 준비한다. 그렇다면 백세 시대에는 60세 이후를 위한 3년 정도의 대학생활을 통하여 전문화된 지혜와 지식을 습득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이 거듭나야 한다.
다음회에는 대학입시제도에 대해서 제언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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