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진실 혹은 거짓
한국음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장류-醬類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으로 대표되는 것 들이다. 이것은 한국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소스였으며, 며느리가 시집을 오면 매일매일 이러한 장류들을 담아 보관하는 장독대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 주된 업무는 커다란 토기 항아리에 담아놓은 장류들이 부패되지 않고 잘 발효가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매일 행주를 들고 깨끗이 닦는 일이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게을러 간장 맛이 변하게 되면 집안이 망한다"는 무서운 경고로 후손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늘은 장독대와 장류, 그리고 주부들의 게으름과의 관계 들을 한번 검토해 보자.
1. 한국의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문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의 장류-醬類 문화이다. 전통적인 한국음식을 조리할 때 이러한 장류는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으며, 특히 간장은 그중에서도 1 순위로 꼽힌다. 적어도 지금의 80대~90대에 달하는 세대들은 결혼을 해서 시댁에 들어오는 순간 시어머니로부터 그 집안 고유의 문화와 풍습에 대해서 꼼꼼하게 공부를 하였으며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그고 장독대를 관리하는 일을 몇 해에 걸쳐 배웠으며, 이 일이 숙달되고 자녀를 출산한 후에야 곳간-倉庫의 열쇠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1-1. 어머니의 가장 소중한 보물창고 장독대
한국의 전통가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장독대다. 그곳은 미리 땅을 한자 이상의 깊이로 파고 고운 자갈을 깔아 물 빠짐을 좋게 하고는 다시 주변보다 흙을 조금 높게 돋우고 나서 널찍하고 판판한 돌들을 놓고 그 위에 토기로 만든 크고 작은 항아리들을 기울어지지 않게 올려놓는다. 그 항아리 속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비롯하여 온갖 양념과 음식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재료들이 들어있다. 장독대는 전통적으로 그 집 안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은밀하면서도 항상 주부의 손길이 잘 닿을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햇볕이 잘 들고, 외부의 오염물질로부터 안전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언제 어느 때 든 출타를 한 남편이 예고 없이 손님을 모시고 들이닥치더라도, 장독대가 든든하게 채워져 있다면 별 걱정 없이 한 끼 정도의 음식은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술방망이와 같은 보물창고였던 것이다.
1-2. 간장 맛은 그 집 고유의 음식 맛
지금처럼 공장에서 획일화된 간장을 대량생산하여 판매하는 시대가 오기 전에는 각 가정마다 날을 잡아 간장 담그는 일을 하였다. 전통적으로 간장은 각 가정 고유의 방식에 따라 담그고 관리하는 노우하우가 있었다. 그러한 기술들은 선대로부터 후대로 대를 이어서 전수되었으며, 그 집안 고유의 음식 맛과 직결되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그 이유는 물론 각 가정마다 기술적인 차이도 있었겠지만 사용하는 물이나 소금 등 재료가 다르고,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그 메주를 발효시키는 공간의 온도나 습도 등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3. 틈만 나면 행주를 들고 장독대로 향하는 어머니.
부지런한 어머니는 아기를 키우고, 밭일을 하는 틈틈이 행주와 물독을 들고 장독대로 향했다. 깨끗하게 행주를 빨아서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 들을 깨끗하게 닦아낸다. 항아리 뚜껑에 내려앉은 먼지는 말할 것도 없고 깨끗하고 멀쩡해 보이는 항아리의 몸통까지 정성 들여 닦고 또 닦아낸다. 물이 줄줄 흐르는 행주질을 하고 나서는 깨끗하게 빨아 꼭 짜낸 행주로 보송보송하고 반짝반짝하게 닦아준다. 이 일은 수시로 반복하며, 특히 온도가 높아지는 여름철이면 더욱 자주 닦아 주어야 한다.
2. '간장 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
2-1. 옹기 항아리의 비밀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옹기 항아리를 많이 이용해 왔다. 특히 소금을 첨가하여 콩을 발효시켜 만든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장류-醬類 음식들은 어김없이 옹기 항아리에 담아 저장하고 관리했다. 그것은 부유한 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같았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옹기는 찰흙-粘土를 곱게 가루 내어 반죽한 다음 원하는 형태의 그릇을 만들고 그늘에서 건조를 한 다음 가마에서 구워 소성-燒成 시킨 다공질-多孔質의 그릇이다. 유약의 사용벼부와 그릇을 굽는 가마의 온도에 따라서 구분을 하는데 유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섭씨 1200도 정도에서 굽는 "토기", 유약을 발라 섭씨 1210도 정도에서 굽는 "도기", 그리고 유약을 발라 섭씨 1230~1240도 정도에서 굽는 "자기"등으로 대충 구별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섭씨 700~800도 정도의 가마에서 구운 토기를 쓰기도 하였으나 점차 온도를 올려 1200도까지 올렸으며, 내구성이나 겨울철의 추위에 의한 파손 등의 이유로 요즘에는 도기를 많이 사용한다. 물론 유리면 처럼 전혀 숨구멍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토기나 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있으며 이것을 보통 숨구멍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만들 때는 부패를 방지하고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해서 반드시 소금이 들어가는데, 이때 사용하는 소금은 보통 3년 이상 창고에 쌓아두어 간수가 빠진 소금을 사용하게 된다. 이 간수 속에는 비소와 같은 독성이 높은 중금속이 들어있어서 인체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하는 물질이지만, 창고에 쌓아 두는 것만으로는 완벽하게 이런 물질이 제거되지 않는다.
2-2. 숨 쉬는 항아리의 숨구멍
옹기 항아리의 숨구멍은 정말 중요한데, 항아리에 담긴 간장이나 된장 속에 섞여 있는 소금 속의 중금속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발효되는 과정에서 이 미세한 숨구멍을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물론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머니 들은 아셨다. 미세하게 끈적이는 물질들이 눈으로 손으로 느껴지는 우리 어머니들의 예민한 감각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이렇게 배출된 독성물질을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숨구멍이 막히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항아리 속의 간장이나 된장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며느리가 게으름을 피워서 간장을 담은 항아리 닦는 일을 게을리하게 되면 간장 속의 독소가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가족들의 건강을 해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집안이 망하는 길이다. 이처럼 옹기 항아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위대한 과학의 산물이다
2-3. 장독대에 심긴 봉선화의 비밀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항아리를 닦고, 예쁜 따님은 장독대 주변에 심겨진 봉선화-鳳仙花를 어루만지며 빨간 꽃잎을 한 줌 따고 논다. 여름밤 어머니는 그 봉선화 꽃을 짓찧어 딸아이의 손톱에 물을 들여주고는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의 봉선화 물이 빠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단다.' 하며 부채질을 해 주었다. 그런데 왜 장독대 주변에 봉선화를 심었을까? 여기에 또 참으로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 파충류인 뱀은 반드시 탈피를 해야 클 수 있는데, 뱀이 탈피를 하기 위해서는 염분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특성상 염분이 많이 흩어져 있는 장독대의 염분을 얻기 위하여 장독대로 모이기 마련이었고, 이를 퇴치하기 위하여 뱀이 싫어하는 봉선화를 장독대 주변에 심었던 것이다.
3. 마무리
한국의 전통적인 필수 조미료 간장, 된장, 고추장. 이것을 담아 놓은 장독대의 옹기 항아리. 그 항아리의 숨구멍을 통하여 독소물질이 배출되고, 따라서 이러한 한국의 전통 장류를 먹는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면역력이 높다. 그런데 그 독소물질이 배출되는 숨구멍이 막히면 장류가 부패하게 되고 맛이 변한다. 그것은 가족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게 되며, 부지런한 주부들은 항아리의 숨구멍을 잘 통하도록 열심히 닦고 또 닦아내는 일을 해왔다. 장독대는 우리 어머니들의 자존감이었고, 가족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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