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내 인생이 끝나기 전에 한국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3년 대 가뭄에 한줄기 소나기보다 더 반가운 낭보에 눈물이 났다.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어쩌면 답답한 백성들에게 진정 놀랍고,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1. 그때도 그랬다.
한국동란의 참화 속에서 태어나, 가난과 굶주림을 체험한 세대들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어려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급했고, "구호양곡"라고 불리는 미국의 원조물자로 오는 밀가루, 옥수수가루, 전지분유 등을 배급해 주는 날에는 종이 봉지를 만들어 가지고 가서, 하교 길에 받아오던 추억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심지어는 "한국이 재건되는 것보다는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라고 비아냥 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정권은 부패했고, 학생들의 피로 몰아낸 정권의 자리에는 총칼을 앞세운 군사정권이 대신 들어섰다.
장기 집권을 위해 3선 개헌, 유신, 긴급조치... 그리고 엄혹한 공포와 야만의 시대.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한 개발 독재는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고, 지금도 그 시절을 거쳐온 세대들에게는 글 한편 쓰는데도 철저한 자기 검열을 하도록 세뇌되었다.
긴 세월 야만의 시대를 거쳐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고난 받던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다.
집권의 성패를 떠나 함께 축하하고, 기뻐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은 정치인, 언론인 등이 노벨평화상에 재를 뿌렸고, 로비설부터 시작하여 국격을 떨어뜨리는 말, 말, 말들을 쏟아 내기에 바빴다.
2. K-문화의 씨뿌림.
그렇게 어렵게 정권을 잡은 세칭 "선생님(!)"은 IMF지원체제라는 암흑의 시절을 백성들의 힘을 얻어 단기간에 졸업했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무엇보다도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만든 영화가 국내 굴지의 자동차 수출을 통해서 벌어오는 외화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인 듯 보였다. 적어도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정권이 바뀌면서 수많은 검열과 금기는 반복되었고, 그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문화 예술 전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류작가의 소식이 언론에 올라왔고, 눈길을 끌었다.
눈여겨보던 그는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쳤고, 국내외의 굵직한 문학상들을 수상하면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3. 춘화처리(vernalization)가 필요한가?
어떤 식물체는 싹을 틔우고 성장하여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기간 저온기간(겨울)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식물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저온이라는 자극을 주어 잠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일종의 자극 효과이다.
문화에도 이러한 자극 요인이 필요한 걸까...?
주목받던 그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금서(禁書)로 분류되었고, 그중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부커상"이나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품도 포함되었다.
왜냐고...? 5.18을 다룬 책이라고, 4.3을 다룬 책이라고...
이념적으로 좌경화된 서적으로 분류를 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고, 국내에서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그의 작품은 200 여 국에 번역되어 읽히는, 소위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문화적 탄압이 그를 더욱 탄탄하고 맷집 좋은 작가로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동토 속에서 싹티울 준비를 하던 한알의 씨앗처럼.
4. 역사는 아직 진행형.
그의 작품을 대하는 시선은 다양할 수 있다.
필자가 본 그의 작품들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하나의 상황을 완성형 또는 완결형으로 표현하지 않고 현재형 또는 미래형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그렇고, 자칫 무심하게 써나갈 수도 있는 상황들을 시인의 뜨거운 심장으로 연출해 낸다는 점이다.
"소년이 온다."가 그렇고, "작별은없다 "가 그렇고, "채식주의자"가 그렇다.
적어도 그의 시각으로 본다면, 1980년의 5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제주의 4.3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월에 죽은 영령들도, 4월에 죽은 영령들도 아직 편안한 안식에 이르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다시 꺼내어 난도질을 하는 편향된 이념의 소유자들 때문이다.
그동안 그의 작품을 접하면서 느낀 감정은 스웨덴 한림원의 수상자 선정 이유가 함축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이 한마디가 어쩌면 한 작가의 삶과 고뇌와 가슴앓이를 한마디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림원의 위원들은 이것을 정확하게 짚었다.
더 이상 잔인할 수도, 더 이상 비참할 수도, 더 이상 슬픈 일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는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서사를 시적 언어로 함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물론 그의 작품은 여늬 소설처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은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의 심장에서 타오르고 있는 내면의 아픔과 고통, 트라우마에 대한 감정을 함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면서..." 읽지 않으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재미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처음 문단 데뷔를 시(詩)로 하였던 데서도 읽히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매우 함축적이고, 시적(詩的)이다.
대표작 "소년이 온다"에서...
옆구리에 총알이 관통하여 사망한 주검을 향해 그는 그저 가슴 아픈 죽음을 떠올리는 평범한 조사(弔辭)가 아닌 고뇌하고,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사자(死者)의 아픔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있다.
한 소년의 주검을 향해 다음과 같이 오열하고 있다.
" 썩어가는 네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네 따뜻한 피를 모두 흘러나가게 한 커다란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그 총의 방아쇠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너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그걸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더 잔인하게 대하라고 명령한 사람들을 생각해.
죽여도 된다고 명령한 사람들을 생각해.......(중략)..."
작가가 고뇌하고 그동안 겪었을 트라우마를 여기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림원의 위원들은 이점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역사를 왜곡하여 얻은 상이라고,
심지어 이자들은 5.18을 "오일팔"이라 읽지 않고 "오 쉽팔"이라고 표기한다.
심지어 스웨덴 한림원을 비난하기도 한다.
한림원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이념적으로 기울어졌다는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낸다.
왜 이럴까...?
5. 작가의 진심에 먹물을 끼얹는 짓은 말아야.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는 노벨상 소식을 듣고, 축하연, 기자회견.... 많은 제안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다.
"지금도 지구촌 한쪽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지금 잔치를 할 일인가요...?"
지구 반대 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는 1년 넘게 전쟁을 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지구에서는 죄 없는 민간인들이, 그것도 세상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날마다 죽어나가는데, 잔치를 할 때냐고 일갈하는 작가의 피울음을 이해하지는 못할 망정 언제까지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 하는가.
6. 맺는말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머릿속엔 전혀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전쟁이나, 폭력, 그로 인해 발생하는 주검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폭력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사돈이 논을 사서 배가 아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축하하는 척이라도" 한다.
이러한 작가를 낳아서 길러주신 한승원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로 기쁜 마음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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