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쓸신지(알면 쓸만한 신박한 지혜)

정월 대보름과 세시 풍속

by 느티나무곽교수 2025. 2. 12.

태음력에 바탕한 한국의 세시풍속에서 음력 1월(정월) 15일은 '정월 대보름'이라 하여 추석과 함께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여겨왔다. 오늘은 정월대보름의 의미와 세시풍속에 얽힌 내용들을 과학적 입장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달의 주기를 중심으로 하는 음력과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양력을 함께 쓰고 있는 한국의 경우 조금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예로부터 생활 속의 과학적 풍속을 가진 특이한 나라다. 특히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달과 깊은 관계에 있어서 어민들에게는 음력이 더 중요한 점을 고려하면 음력을 중심으로 하는 세시풍속은 나름 조상들의 과학적 지식을 토대에서 만들어진 생활 속의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월 대보름의 풍속들

태음력을 기준으로 보면 매월 15일은 달이 가득 찬 만월(滿月)이 되고, 그중에서도 1월의 보름달은 가장 크고 밝게 빛난다 하였으며 다양한 풍속이 전해져 왔다.
어머니는 봄부터 여름, 가을을 지나는 동안 부지런히 모아 두었던 말린 나물들을 모두 꺼내어 다양한 나물 음식을 준비하고, 찹쌀과 온갖 잡곡을 섞어서 오곡밥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그것을 온 동네 집집마다 아홉 집 이상의 밥과 나물을 나누어 구해다가 하루 아홉 번 이상 식사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마당에 대나무를 준비하여 달집을 태우고, 청년들은 마을단위로 고갯마루에 평소에 쌓아놓았던 돌멩이들로 투석전을 벌인다. 마을마다 줄다리기를 하여 이긴 마을은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좋아하고, 진 마을은 애통해하였다.
마을마다 동구밖에는 무게별로 "들돌"을 준비해 두고 마을을 장정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돌을 들어 올려 어깨너머로 던지는 놀이를 통하여 힘자랑을 한다.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동무들의 이름을 부르며 더위 팔기를 하고, 논둑마다 뛰어다니며 쥐불놀이를 하였으며, 아낙들은 그네 타기와 널뛰기를 하며 하루를 즐겼다.

쥐불놀이 - 한국(by pixabay)
쥐불놀이 - 한국(by pixabay)

3. 미신과 과학의 경계(풍속의 과학적 고찰)

3-1. 음식에 대한 풍속

3-1-1. 오곡밥과 아홉 집의 나눔

평소에는 계절에 따라 쌀밥과 보리밥을 주식으로 하다가 이날이 되면 오곡밥을 지었다. 집집마다 넣는 잡곡의 종류는 조금씩 달랐고, 이에 따른 영양분 또한 달랐을 것이다. 특히 농경문화에 있어서는 1년 중 겨울철은 농한기로서 운동량이 부족하고, 몸에 축적되었던 각종 미량원소, 특히 미네랄(minerals)이나 비타민(vitamins) 등 특별한 영양소들이 고갈되기 마련이었으며, 노지에서 자연에 의존하던 농법에서는 이러한 영양소들을 섭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가능한 많은 집들이 서로 밥을 나누다 보면 더 많은 종류의 잡곡들을 섭취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이었고, 또한 이런 나눔을 통하여 이웃 간의 정 또한 두터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3-1-2. 나물의 비밀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이 전무했던 옛날에는 자연에서 나는 나물들을 채취하여 삶고 말리는 과정을 통하여 풍부한 영양소를 축적하고, 저장이 가능하였을 것이며, 또한 이렇게 준비한 나물들은 각종의 영양소들을 섭취할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가 되었다.
더구나 싱싱한 채소를 생식하는 것보다, 이러한 나물 방식은 소량으로 더욱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커다란 접시로 한가득 담아 온 샐러드보다 작은 접시에 가진 양념을 하여 먹는 나물 한 접시가 더 많은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들이 거듭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확실히 현대 과학적 입장에서 보아도 지혜로운 방법이었다.

3-1-3. 부럼을 깨고 귀밝이 술을 마시는 이유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부럼의 재료는 요즘 흔히 말하는 견과류들이다. 호두, 잣, 밤, 등등.
이러한 재료들의 특징은 고순도의 불포화 지방산과 면역기능에 관여하는 영양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술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우리가 먹은 식재나 약재들을 온몸으로 잘 퍼지게 하는 순환의 기능이 매우 높은 음식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음식들을 보름날 아침 아이들에게도 한 모금씩 마시게 하여 건강을 지키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풍속이었던 것이다.

3-2. 왜 투석전(投石戰)이었나?

마을입구 언덕 위에 평소 길을 다니면서 쌓아 두었던 돌무덤은 평소에는 어두운 밤길에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지혜였으며, 이러한 돌들 중 맞아도 큰 부상을 입지 않을 정도의 작은 돌멩이들을 이용하여 멀리 던져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풀고, 다가오는 농사철을 대비하는 일종의  몸풀기 운동이었던 것이다. 물론 밤이 되면 함께 모야 달집을 태우고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비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3-3. 들돌에 숨겨진 비밀

농경시대의 가장 중요한 점은 장정으로서 성인 한몫의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추었는가였다. 
거기에 따라서 품삯이 정해지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상머슴"인지 "새끼머슴"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놀이였다. 단순한 힘자랑이 아니라 연봉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장이었던 것이다.
쌀 한 가마(90kg) 무게의 돌을 들어서 어깨너머로 던질 수 있으면 성인 장정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마을입구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무게별로 몇 개씩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시골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이러한 돌들이 보존된 마을을 볼 수 있다.

3-4. 쥐불놀이의 과학

겨울이 되면 대지는 얼어 동토(凍土)가 된다. 그러다가 동지가 지나고 소한, 대한을 지나 입춘을 넘기면서 땅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이때 부풀어 오른 땅은 틈새가 많이 생기고, 이듬해 농사를 지을 때 이를 소홀하게 관리하면 애써서 잡아놓은 논의 물이 새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벼농사의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논둑을 뛰어다니면서 쥐불놀이를 하면 논둑에 떨어진 잡초의 씨앗도 태우고, 병해충도 태운다. 뿐만 아니라 부풀어 오른 논둑을 단단하게 다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온종일 뛰어다니면서 얻는 운동 효과는 덤이었다.
물론 아낙들은 집안에서 널뛰기나 그네 타기를 통하여 근력을 다지고, 다가오는 농사철을 준비했던 것이다.

3-5. 줄다리기의 멋과 장쾌함.

줄다리기를 위하여 적어도 몇 달 전부터 마을마다 새끼를 꼬아 줄을 만들고 이것을 결전의 날에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한자리에 모여 고를 만들어 걸고 양편으로 갈라져 줄을 당겼다.
당연히 힘이 센 마을이 이길 수밖에 없었고, 힘 좋은 사람이 많은 마을의 농사일이 훨씬 수월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지금도 경남 의령을 비롯하여 전통 줄다리기 민속문화가 전승된 곳들이 많이 있다.

4. 마무리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나물들을 먹고 부럼을 깨물고 하는 사라져 가는 풍속들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물론 일 년 내내 풍족한 영양 섭취와 운동으로 부족함이 없는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그저 그런 '재미있었던 민속' 정도로 치부할 수 있겠으나, 그 뿌리를 정확하게 알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치와 아리랑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동북공정, 서북공정에 공을 들이는 중국의 행태를 염려하며, 언젠가 줄다리기 나 씨름 또한 자기네 문화라고 우겨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것은 그저 노파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