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동지(冬至)의 세시 풍속과 동지 팥죽

동지(冬至)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이날은 동지팥죽을 끓여 나누어 먹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며, 민간에서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행사들이 있다. 동지의 유래와 의미, 동지팥죽에 얽힌 과학적 근거와 의미등을 살펴보자.

1. 동지(冬至)의 유래와 의미

동지(冬至)는 24 절기 중 22번째 절기로서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남회귀선, 즉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는 날을 말한다. 따라서 매년 양력으로 12월 22일 또는 23일경에 든다. 양력으로 동지(冬至)가 음력 11월 초순(1일∼10일)에 들어있으면 애동지, 또는 애기동지, 중순에 들어있으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어있으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기도 하다. 이날을 기점으로 하여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지며 죽은 태양이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물론 기온이 가장 추워지는 것은 동지보다 한달 쯤 뒤에 오는 대한 무렵이지만, 대지는 서서히 얼음을 풀고 만물을 소생시킬 준비를 하는 시기로 보았다. 사실 오운육기적으로 본다면 동지 한 달 뒤에 오는 대한을 기점으로 양기가 성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시차는 여름철 하지가 한달 쯤 지난 대서에 이르러 가장 더워지는 이치나 마찬가지다. 아무튼  농경문화 사회에서 동지는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은 24 절기의 의미들이 많이 희석되고, 절기마다 행해지던 대부분의 세시풍속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동지는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고 하였고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부여하여 전통적으로 설 다음으로 중요시 여기는 절기였다. 주나라 때는 동지를 설로 삼았으며 한국에서도 고려 충선왕 이전 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추정한다.

민간에서는 집집마다 팥이 들어간 죽을 끓이거나 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그 팥죽에는 찹쌀로 만든 단자를 넣어 끓이는데 단자를 새알만 한 크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불렀으며 나이만큼 숫자를 헤아려 새알심을 먹어야 한다고도 하였다. 어머니들은 팥죽을 끓여 설명절에 차례를 지내듯이 시간을 맞춰 사당에 죽을 올리고, 집 밖 문설주나 담벼락에 죽을 뿌려 액운을 물리친다고 하였다. 애동지에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팥죽을 끓이지 않고 대신 팥이 들어간 떡을 해 먹었으며 중동지에는 팥죽이나 떡 중에 하나를 해서 먹었다.

남자들은 동구밖에 모여서 쌀가마를 가져다 놓고 들어 올리기 시합을 하였다. 지금은 쌀 한가마의 무게를 80㎏으로 하지만 옛날에는 90㎏을 한 가마라고 하였다. 이것을 땅에 놓고 들어 올려 어깨 위에 둘러 멜 수 있어야 장정으로 인정받고 온전한 한 사람 몫의 품삯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겨우내 웅크리고 집에만 들어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가올 농사철을 대비하여 서서히 몸을 풀어보는 집단의식 이었다.

농사를 많이 짓는 집에는 ‘머슴’이라고 하여 그 집의 농사일을 책임지고 해내는 일종의 계약직 인부를 두었는데, 동짓날을 기준으로 하여 머슴들의 계약과함께 "새경"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연봉협상이 이루어진다. 힘이 좋고, 성실하며, 일머리가 좋아 주인댁의 재산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머슴일수록 환영받고  “새경”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2. 동지에는 왜 동지팥죽을 먹었을까?

“동지에 팥죽을 먹지 않으면 앉은뱅이가 된다”는 속설이 있었다.

일제 식민사관이 판치던 때는 이것 또한 미신(迷信)이라고 치부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적 논거로 조상들의 이러한 세시풍속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증명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체 내에 비타민 B가 부족하면 각기병(脚氣病)에 걸린다는 것은 잘 알려진 과학이다. 그런데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기 어려웠던 고대에는 한 해를 보내는 중에 한 겨울이 되면 비타민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비타민 B군이 풍부한 팥을 먹으면 각기병, 즉 앉은뱅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조상들은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각기병에 걸려 앉은뱅이가 되는 것을 보고 '사악한 귀신의 조화' 정도로 알았을 것이고, 저장성이 뛰어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붉은팥으로부터 그 답을 찾았을 것이다. 오랫동안의 경험에 의하여 팥죽을 먹으면 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지혜를 터득했을 것이다. 이를 어찌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엄연한 생활과학이요 지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왜 벽에 뿌리고 다녔을까?

사람의 숫자가 자산이었던 농경사회에서 건강한 노동인력은 매우 귀한 자산이었고, 국토방위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고을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은 모든 백성들의 건강까지도 돌봐야 할 책임이 있었고, 법령이 아닌 '귀신의 조화'라는 범접하기 어려운 세속의 속설을 역으로 이용하여 팥죽이라는 절기음식을 도입하여 관습화 시켜놓고, 어느 집에서 형편이 어려워 팥죽을 먹지 못했는지 파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문설주나 담벼락에 팥죽을 뿌리도록 하는 것이었으리라.

팥죽이 뿌려지지 않은 집에는 그 형편을 고려하여 이웃에서 서로 팥죽을 나누어 주고, 함께 화목도 다지고 건강도 도모하는 미풍양속이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동짓날이 되면 모든 빚을 탕감해 주는 풍습도 있었다니 한번 더 음미해 볼만 한 일이다.

3. 팥의 영양성분(팥 100g 당의 영양소)

참고로 현대과학으로 분석된 팥의 영양성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칼로리 312Kcal, 탄수화물 24.8g, 식이섬유 16.68g, 지방 0.1g, 단백질 7.5g, 비타민B1(티아민) 0.12㎎, 비타민B2(리보플라빈) 0.06㎎, 비타민B3(나이아신) 0.72㎎, 비타민B5(판토텐산) 0.43㎎, 비타민B6 0.1㎎, 비타민B9(엽산) 121㎍, 비타민C 422.9㎎, 칼슘 128㎎, 인 424㎎, 아연 4.99㎎, 구리 0.3㎎, 철분 5.2㎎, 망간 0.57㎎, 마그네슘 52㎎, 칼륨 1,520㎎, 나트륨 8㎎, 셀레늄 1.2㎍

4. 팥의 효능효과

팥은 동북아시아 원산으로 소비량도 이 지역에서 가장 많다. 전통적으로 한방에서도 적소두(赤小豆)라 하여 약재로 사용했던 팥의 효능을 살펴보자. 앞의 영양성분에서 살펴본 자료를 근거로 하여 정말 다양한 효능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팥-적소두(한국)

4-1. 단백질 공급원

단백질은 성장과 회복에 필요한 영양성분으로 새로운 조직과 세포를 만들고 에너지 공급을 증가시켜 준다. 특히 팥에 함유된 메티오닌, 이소류신, 트레오닌 성분이 피부와 모발, 손상된 근육의 복구와 근육의 형성은 물론 치아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4-2. 뼈 건강에 도움

마그네슘, 칼슘, 철 등의 성분이 풍부하여 뼈와 관절의 강화에 도움을 주고 골밀도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갱년기 이후에 약해지기 쉬운 뼈 건강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

4-3. 다이어트와 부종의 감소

풍부한 단백질과 식이섬유는 포만감을 오래 지속해 주고, 식욕을 억제해 주며 이뇨작용을 하여 체중 감량을 촉진시켜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

4-4. 장 건강에 도움

풍부한 식이섬유와 사포닌으로 배변 활동에 도움을 주고 대변량을 조절하여 음식물의 통과를 촉진시킨다. 체내 노폐물의 배출에도 도움을 주어 유해물질의 흡수율을 낮춰준다. 또한 풍부한 마그네슘도 소화작용을 돕는다.

4-5. 피부 미용과 건강

팥 껍질에 함유된 플라보노이드와 페놀산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피부 세포형성을 촉진하고 주름감소에 도움을 주며 풍부한 아미노산은 콜라겐을 증가시켜 주고 피부결 개선에 효과가 있다.

4-6. 항산화 및 항노화 효과

사포닌, 트립토판, 안토시아닌, 라이신 등 30여 가지에 달하는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체내 유해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고 세포의 손상을 예방해 주며 각종 성인병과 노화방지에 크게 도움을 준다.

4-7. 심혈관 건강과 염증의 완화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되는 풍부한 식이섬유, 칼륨, 비타민, 마그네슘, 엽산 등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여 고혈압, 동맥경화, 혈전 형성의 예방 등 심혈관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염증의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

4-8. 해독작용과 신장 건강

풍부한 칼륨과 사포닌 성분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이뇨작용을 촉진시키며 노폐물의 배출을 도와주어 신장을 건강하게 해 주고 해독작용에 도움을 준다. 예로부터 붉은팥을 적소두(赤小豆)라고 하여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하는 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4-9. 치매예방과 뇌 건강 효과

팥은 곡물 중 티아민이라고 하는 비타민 B1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데 기억력 개선, 알츠하이머 치매 예방 등 뇌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10. 두피건강과 탈모예방

두피의 혈액순환을 개선해 주고 모발에 영양공급을 원활하게 해 주어 탈모예방과 두피 건강에 도움을 준다.

4-11. 각기병의 예방

비타민 B군이 부족할 경우 각기병을 유발할 수 있는데, 팥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비타민 B군은 이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혜로운 조상들은 절기음식으로 비타민의 섭취가 부족되기 쉬운 한겨울 동짓날 팥죽을 끓여 나누어 먹는 전통 풍습을 만들었다.

5. 팥의 부작용과 주의사항

이처럼 좋은 팥도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① 과다섭취 시 팥에 함유된 다량의 섬유질 함량으로 인해 복부팽만, 소화불량, 등이 발생할 수 있음.

② 칼륨 성분이 풍부하여 칼륨의 과다섭취를 주의해야 하는 신장 질환 환자의 경우에는 주의를 요함.

③ 당뇨병이 있는 경우 죽의 형태로 섭취 시 소화 흡수가 빨라 급격한 혈당수치 상승이 우려됨, 팥죽으로 먹을 경우 양을 조절하고 설탕을 많이 넣지 않도록.

④ 팥 자체가 찬 성질의 음식이므로 몸이 찬 사람들은 많이 먹으면 배탈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고 이뇨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신장이 약한 사람도 과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⑤ 설탕을 넣으면 사포닌 등 여러 성분을 파괴하거나 흡수를 방해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6. 마무리

아세(亞歲)라고 하여 설날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동지(冬至)의 의미와 절기음식으로서의 동지팥죽의 중요성 및 주의사항까지 살펴보았다. 동짓날 정성들여 만든  팥죽 한 그릇 먹고 진짜 나이 한 살 더 먹는 풍습을 되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