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전통적으로 귀신 잡는 개로 삽살개가 있고, 귀신 잡는 풀로 삽주가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 얽힌 얘기를 바탕으로 삽살개와 삽주의 비밀을 알아본다.
1. 삽살개의 의미
전통적으로 얼굴에 사자처럼 큰 머리에 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털이 수북하게 난,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멋있는 모습의 삽살개는 전통적으로 진돗개나 풍산개 들과 함께 한국의 명견이었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 한 이후 꾸준하게 한국의 명견들을 말살하는 정책을 펼쳐왔는데, 1940년대부터 일본군의 방한복을 만드는 목적으로 한국의 토종개들을 많이 죽였다. 이 과정에서 두툼한 털을 가진 삽살개는 희생양 1호가 되었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 한 명견이었다. 다행히 1960년대부터 삽살개 보존운동이 펼쳐지면서 1992년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경상북도 경산의 삽살개육종연구소에 수백 마리의 삽살개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삽살개의 명칭이다. 삽은 물리친다, 쫓아낸다, 몰아낸다, 없앤다는 뜻이고 살은 귀신, 액운 즉 사악(邪惡)한 기운을 뜻한다. 흔히 좋지 않은 화를 입었을 경우 "살이 끼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살이다. 즉 삽살개는 사악한 기운, 즉 "귀신을 물리치는 개"가 되는 것이다.
2. 당집이나 남의 집 제실(祭室)에서 사랑놀음을 하면 정신병자가 된다?
옛날에는 젊은 청춘남녀가 마땅히 데이트를 즐길만한 장소도, 문화도 부족하였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물레방앗간'이며 '당집'이며, '부잣집의 제실' 같은 은밀한 곳을 찾아 밀애를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시골에 가면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에 약간 정신이상이 된 젊은이들이 한둘은 있었고, 이구동성으로 '아무개네 제실에서 밀애를 즐기다가 귀신의 노여움을 받아 저리 되었다.'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회자되곤 하였다. 그렇다면 정말 귀신의 존재는 실존하는 것일까?
3. 삽주의 용도
3-1. 생활 속의 삽주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새로 지은 집으로 집들이를 하는 경우 제일 먼저 환기를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집안에 차있는 습기를 제거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오래 비워둔 집이나 새로 지은 집들은 습기가 많이 차고, 그러한 습기들이 모공을 통하여 인체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고, 기혈의 순환이 막혀서 병을 일으키기 십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습사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환기와 불때기 등도 중요하지만, 삽주를 구해다가 화로에 놓고 이방, 저 방 삽주를 태워 그 연기를 자욱하게 피웠다. 그렇게 하면 벽이나 천장, 방바닥 등의 습기를 쉽게 제거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피어있는 곰팡이나 좀과 같은 질병의 원인물질들을 살균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제실이나 당집 등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1년에 한두 번 사용하고는 거의 문을 걸어 잠그고 통풍이 되지 않는 환경으로서 습사가 늘 가득 차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잔뜩 긴장한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불태우다 보면 열린 모공을 통하여 습사가 침투될 수밖에 없고, 만약 기가 허약한 사람이라면 그 습사로 인하여 인체에 치명적인 질환이 생겨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3-2. 생약재로서의 삽주
생약재로서의 삽주는 물론 오늘날에는 백출과 창출로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지만, "명의별록"이라는 고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약재로 사용되었다.
몸 안의 영양 대사 중 사용하고 남은 당분은 중성지방으로 전환되어 체내에 축적이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내장지방 같은 것이다. 이것을 분해시켜 몸 밖으로 배출하거나 대사 시키는 작용 즉 거습(祛濕) 또는 제습(除濕) 작용을 하는 것이 삽주였다.
4. 흉가에 얽힌 추억 하나
오래 전에, 근무하던 대학에 후배교수 한분이 문의를 해 왔다. '학교 근처에 썩 괜찮은 집이 하나 싸게 나와서 계약을 했는데, 막상 계약을 끝내고 나니까 동네 사람들 말이 그 집은 흉가로서 그동안 바뀐 두 가정에서 정신이상자와 중환자가 나왔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걸 사야 될까 취소해야 될까?'라는 것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분으로서는 난감해하였다. 함께 현장을 방문해 보니 집 앞뒤로 제법 넓은 마당이 있고 다락이 딸린 3층 양옥인데 시가의 절반가격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일단 한번 집을 둘러보니 집 뒤뜰 끝에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있는데 물이 많을 때는 그 물이 마당으로 온통 넘쳐 들고, 평소에도 계곡물이 뒷마당을 감고 돌아 지형이 낮은 마당으로 물이 잘 스며드는 지형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오랫동안 비워 둔 탓도 있었겠지만 방바닥에서 천정까지 습기가 눅눅하고 온통 곰팡이가 피어서 코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우선 위와 같은 원리를 설명하고, 주인에게 요구하여 집 뒤의 계곡물이 집안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굴삭기로 작업을 하여 배수로를 깊게 파서 돌리고, 뒷마당을 빙 둘러 옹벽을 친 다음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는 삽주를 한말 사다 주면서 방마다 피우라고 했다. 그리고는 몇 주 후에 가보니 뒷마당의 흙이 보송보송했다. 집안에 보일러를 가동하고, 며칠 뒤에 도베도 다시 하고, 그리고 이사를 한 후에는 교회, 학교, 친구 등등 따로따로 모두 불러 집들이를 며칠간 하라고 했다. 우선 환기와 보온, 제습, 거기에 삽주로 제습 및 살균을 하고, 그리고도 집들이를 며칠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남은 습사를 조금씩 모두 묻혀 갔으리라.
결과는,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과 딸은 건강하게 잘 자라서 대학도 가고, 취업도 잘했다. 두 분 내외도 건강하게 교회 잘 다니고 계시고.
4. 마무리
인체 내부는 물론 집안의 제습까지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삽주는 확실히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귀신(습사)을 쫓는 귀한 약재임에 틀림없다. 다만 몸이 허한 사람을 보하는 백출과 실한 것을 사하는 창출의 용도가 다르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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