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시대, 진(秦) 왕 정(政)은 천하를 통일하여 제국을 세우고,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진나라의 처음(始) 황제라 하여 진시황제라 불린다. 그에 얽힌 많은 일화 중 분서갱유사건을 재해석해본다.
1. 서론
자고 일어나면 전장에 나가 싸워야 한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불리는 중국 고대 일곱 개의 나라들 진, 초, 연, 제, 한, 위, 조의 왕들은 저마다 천하 제패를 꿈꾸며 부국강병책을 도모하고, 인재를 널리 모아 묘책을 강구한다. 그러다가 진(秦) 나라가 차례차례 세력을 넓혀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룬다. 천하는 통일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어지럽고,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하여 수백의 철학과 이념들이 난무하는 혼란기였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서적들을 압류하여 불태우고(焚書), 구덩이를 파고 선비들을 생매장하는(坑儒) 초 강경책을 쓰게 된다. 과연 진시황제는 처음부터 이처럼 무지하고 파괴적인 군주였을까?
2. 춘추전국시대
2.1. 춘추시대(B.C 770∼B.C 403년)
주(周) 왕조가 낙양으로 천도하기 이전의 시대를 서주 시대라 하고, 천도한 이후를 동주시대라고 한다. 동주시대는 다시 춘추(春秋) 시대와 전국(戰國) 시대로 나누어지는데,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년 주왕조가 도읍을 옮긴 때부터 기원전 403년 진(晉) 나라의 대부(大夫)인 한(韓)· 위(魏)· 조(趙) 세 성씨들이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할 때까지의 370여 년을 말한다.
2.2. 전국시대(B.C403∼B.C221년)
전국시대는 기원전 403년 이후부터 진(秦) 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약 180여 년을 말한다. 춘추(春秋)라는 말은 공자가 엮은 노(魯) 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에서 유래되었고, 전국(戰國)이라는 말은 한(漢) 나라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3. 제자백가(諸子百家) 그리고 잡가
3.1. 제자백가
잘 아는 것처럼 공자, 맹자, 순자처럼 자(子)를 붙여서 부르는 분들은 하나의 학설로 일가를 이룬 큰 스승,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이름 끝에 자(子)를 붙여서 존칭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나름의 철학적 이론과 처세를 통하여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하여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여러 제후들이 천하 제패를 위해 부국강병을 꾀하였고 그 과정에서 능력 있는 인재들을 등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많은 인재와 사상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 시기에 하나의 학설로 일가를 이룬 여러 학자들과 학파들을 총칭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한다. '제자(諸子)'란 말은 모든(諸) 스승이란 뜻이고 '백가(百家)'란 많은 파벌을 의미하는 말이다. 또한 이들의 사상에 촛점을 맞춰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음양가, 잡가(雜家), 병가(兵家) 등을 총칭하여 이르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독창적인 학술과 사상을 전개함으로써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이 시대 대표적인 제자백가 사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유가(儒家) : 공자, 맹자, 순자 등이 대표적인 사상가다. 기본 사상은 인(仁)이다.
● 도가(道家) : 노자, 장자가 대표적인 사상가다. 도(道)를 자연의 법칙이라 보았으며 기본 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 법가(法家) : 한비자가 대표적인 사상가다. 법가는 법(法)을 중시한다.
● 묵가(墨家) : 묵자가 대표적인 사상가다. 기본 사상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3.2. 잡가(雜家)
잡가는 원래 이런저런 학파들의 학설과 이론을 짜깁기하듯 엮어서 주장을 하던 학파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류들 중에는 오늘날의 과학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이론과 학설로 그야말로 혹세무민 하거나 심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가리켜 잡사(雜士)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신선이 되는 방법이라면서 독성 약물들을 제대로 포제(炮製) 하지도 않고 복용하고는 대낮에 술에 취한 듯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부류들이나 불로장생을 도모한다면서 수은이나 비소가 함유된 독성의 단약(丹藥)이 오남용 되는 등 사회상이 극도로 어수선하고 혼란한 시기였다. 중요한 것은 이들 잡사의 무리 중에는 많은 유학자들도 빠져들었고, 이것이 당시 사회적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었던 셈이다.
4. 진시황제와 한비자
천하를 통일하고 전국시대를 마감한 진나라 시황제는 폭군이라고 전해지는 것과는 달리 대단한 학구파였다. 특히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고 만리장성을 축성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그 과정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법가(法家) 사상가 한비자라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말기 한(韓)의 사상가였던 한비는 법을 엄격하게 세우고 이를 엄하게 지키도록 하여 상벌을 명확하게 하여야 군주의 권력이 강화된다고 보았으며, 그의 저서 『한비자』에서 “신하를 감독하는 수고를 꺼려 신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기회나, 관직을 주거나 빼앗는 권리인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중신에게 위임하는 군주는 결국 지배자의 지위를 빼앗기게 된다”라고 하여 강력한 군주의 권력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왕은 백성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어야 한다”고도하여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백성들의 이익을 활용하는 것이어서, 맹자의 왕도정치보다는 오히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진시황제는 한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한비자』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며 ‘이런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시황제의 최 측근으로 이사(李斯)라는 책략가가 있었는데, 한(韓) 나라로 연통을 하여 한비를 초청한다. 못난 외모에다 말더듬이였던 한비는 석학이었던 상앙에게서 이사와 함께 동문수학을 하였다. 이사는 늘 자신보다 뛰어난 한비의 학식과 재능을 시기질투 하였던바 시황제에게 그를 모함하였고, 결국 한비는 자결에 이른다.
5. 진시황제의 사회정화운동
전국칠웅을 차례로 멸하고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는 대단히 출중한 인물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책을 가까이하고 특히 당시의 시대상황에 가장 필요한 부국강병의 방법론을 『한비자』에서 찾았다. 그리고는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고, 혼란하고 어지러운 혼돈의 사회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통일 대업을 이룩한 그는 태산에 올라 봉선(封禪) 의식을 거행하고 스스로를 '진인(眞人)이라 칭하면서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불사약을 널리 구하는 등 권력의 정상을 지키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관련하여 서복이라는 당대의 방사(方士)를 봉래산(지금의 한국의 금강산 또는 제주도)으로 보냈다는 설도 전해 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승상 이사(李斯)의 상소를 받아들여 수많은 학자들과 서적들을 죽이고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전해진다. 특히 법가의 기본 사상인 ‘엄격한 법집행’ 정신을 따라 혼란한 사회의 주범으로 당대의 정책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농업과 의약, 복서(卜書)와 같은 실생활에 관련된 서적을 제외하고는 유포와 토론을 금하였고 수많은 잡사(雜士)들을 주목하고 이들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모든 서적들을 강제로 압류하고 불태웠으며, 그들을 모두 체포하여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리는 초 강경책을 쓰기에 이른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잡사들 중에는 유학자들도 많이 섞여 있었을 수도 있고, 유가의 경전들이 함께 불태워지기도 했을 거라는 가설은 전혀 터무니없는 추론일까?
6. 마무리
물론 법가의 사상을 받아들여 천하통일을 하고 치국의 근본으로 삼은 시황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유가의 이론에 거부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엄격한 법과 그 집행을 통하여 공포 정치를 하였고, 수많은 박사들을 참모로 거느리면서도 이사(李斯)의 농단에 정치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을 아닌지. 역사는 항상 그 이면까지 읽지 않으면 안 되고, 패망한 왕조나 국가의 역사는 항상 좋은 점만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필자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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