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누구일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까? 정치인, 군인, 경찰, 소방대원, 선생님, 사장님... 다 좋다. 위기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바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 하루였다. 다음은 지난주의 일기장에서 옮겨온 글이다.
1. 시작하며
요즘 들어 일상이 된 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오늘따라 집에서 늦게 출발했다. 신호를 받고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집 앞 건너편에 있는 중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서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그대로 툭! 떨어진다. 넘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서 있다가 갑자기 통나무가 넘어지듯이 툭 떨어진 거다.
현장을 조금 지나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운 후 달려가 보니 마침 바로 옆에 계시던 중년 아저씨가 인공호흡을 하고 계셨다.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들을 향하여 119에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목 밑에 가방을 끌어다 받혀 기도를 확보하고 호흡과 맥을 확인했다. 맥은 힘이 없지만 뛰고 있었고, 호흡은 없다.
손과 발을 주무르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년에게 “힘드시면 교대하시죠...!”라고 말하고 옆에 계시는 아주머니 한분께 양산을 펴서 머리 쪽을 좀 햇볕으로부터 가려 그늘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막 교대를 하려고 하는데, 후~! 한숨을 토해 내신다. (현장 모두 박수와 안도의 한숨!)
볼을 톡톡 두드리면서 말소리 들리냐고 물으니 대답을 하신다. 잠시 후 눈을 뜨시고는 두리번거리신다.
옆에 계시던 분들에게 물으니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툭 쓰러졌다는 것이다.
본인에게 물어보니 아무 기억이 없단다. 나이를 물으니 86세라는데, 고혈압, 당뇨 같은 질환이 있느냐 물어보니 모른다는 거다. 가족도 아무도 없고, 누구 연락할 연고자를 물어도 아무도 없이 혼자 사신단다. 그러면서 전화기를 찾는다.
확인해 보니 넘어지면서 충격으로 그랬는지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나중에 구급대원들이 와서 전원을 확인하더니 액정이 나갔단다.)
2. 구급대원입니다.
잠시 후 건장한 청년 하나가 뛰어오더니 “저는 구급대원입니다. 금방 구급차가 도착할 겁니다.” 하는 거다. 이 청년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으니 가던 길 돌아서 달려온 것이다.
일단 한숨을 돌리고 자세히 보니 이마 왼쪽에 탁구공만큼 혹이 나 있는데, 빨갛게 터지기 직전이다. 아마 넘어질 때 이마가 땅에 닿으면서 그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으신 듯하다. 아무튼 함께 부축하여 인도에 설치된 그늘막으로 옮기고 나니 일으켜 달란다.
다른 데는 이상이 없는 듯하여 어깨를 양쪽에서 부축하여 일으켜서 그늘막 지지대에 기대고 앉혀 드렸더니 깊은 숨을 푸욱 내 쉬셨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혈압과 맥박을 체크하고, 요모조모 살피고 말을 시켜보고 얼핏 보기에도 숙련된 수칙대로 움직인다. 간단히 상황설명을 해 드리고, 이마의 혹을 가리키며 머리에 충격이 갔을지 모르니 병원으로 모셔서 검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덕분에 운동시간에 조금 늦기는 했어도, 좋은 일 했다는 뿌듯함과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기분은 좋다.
짐작컨대 독거노인이라서 정기적인 건강검진 한번 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녀들 노출되는 게 창피해서 혼자 산다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3. 자신을 아는 노인이 되어야.
아무튼 오늘처럼 햇볕이 강하고 더운 날 연로하신 노인이 혼자 외출을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꼭 외출할 일이 있다면 보호자와 함께 나가거나, 아침저녁 시원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지혜일 듯싶다.
그러고 보니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부쩍 아내와 자식들의 건강 잘 챙기시라는 성화가 득달같다.
하긴 국공노(국가 공인 노인네)가 지난 지가 몇 년인데...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다만...
오늘따라 수영장 25미터 레인이 유난히 길어 보인다. 진짜 내가 나이를 먹었나...?
아무튼 좋은 일 한번 한 셈 치고, 남의 일이 아니라 내게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각성하는 기회로 삼기로 하였다.
4. 마무리
그나저나 한국인들은 참 대단하다. 자진해서 자신의 가방을 목에 받치라고 내어주고, 인공호흡을 시작하고, 전화를 하고, 양산을 펼쳐 그늘을 만들고, 정말 훈련을 받은 사람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말 훌륭한 시민정신의 발로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은 이런 자발적인 시민정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에 잠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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