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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지(알면 쓸만한 신박한 지혜)

[여인열전 076] 장계향(張桂香 – 정부인 안동장씨

by 느티나무곽교수 2025. 12. 30.

<한국 최초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을 쓴 여중군자>

조선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여성으로, 10남매를 훌륭히 키워 셋째 아들 이현일은 이조판서가 되어 정부인에 봉작되었다. 73세에 눈이 어두운 중에도 146가지 조리법을 한글로 기록했고, 300명의 걸인을 먹이며 나눔을 실천했다. 시·서·화에 뛰어났고 초서의 달인이었으나 음식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쉽다. 과연 장계향은 누구였을까.

1. 출생과 성장

1.1.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에 태어나다

장계향은 1598년(선조 31년) 11월 경상북도 안동 서후면 금계리(검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계향(桂香), 호는 따로 없다. 본관은 안동(安東) 장 씨다. 1598년은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였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고, 7년간의 대전쟁이 막을 내렸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장계향이 태어났다. 아버지 장흥효(張興孝, 1564-1633)는 자가 자숙(子叔), 호는 경당(敬堂)이다.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퇴계 이황의 학풍을 이은 성리학자였다. 참봉 벼슬을 지냈지만, 대부분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살았다.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어머니 안동 권씨는 첨지 권사온의 딸이다. 장계향은 외동딸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1.2. 사랑방을 기웃거리던 소녀

장계향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4세에 이미 천자문을 문밖에서 듣고 따라 외울 정도로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다. 아버지는 집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장계향은 사랑방을 기웃거리며 아버지의 가르침을 곁눈질로 배웠다.

아버지는 퇴계 학풍을 이어받은 학자답게 '몸을 삼가고', '항상 공경하는 자세'를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야사에 따르면 장계향은 사랑방 밖에서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경서를 가르치는 소리를 듣고 외웠다.

어느 날 제자 중 한 명이 대답을 못하자, 장계향이 문밖에서 소리 내어 답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놀라 밖을 보니 어린 딸이 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여성에게 본격적인 학문 교육은 허락되지 않았다. 장계향은 아버지로부터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듣고 익히며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1.3. 시·서·화에 뛰어난 재원

장계향은 시(詩)와 서화(書畫)에 탁월했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당대 초서의 일인자로 알려진 정윤목을 탄복케 했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은 "여인의 작품 중에 일찍이 이와 같은 것이 없었다"고 극찬했다.

10세 무렵 장계향이 쓴 시를 수로 놓아 모은 『전가보첩(傳家寶帖)』이 전해진다.

이 시첩은 전체 8면으로, 4〜5면에 상서로운 구름과 여덟 마리의 용을 수놓아 '팔룡수첩(八龍繡帖)'이라고도 불린다. 이를 보면 장계향의 높은 학문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림과 자수에도 능했다. 인간적인 수양과 옳고 바른 학문수업, 인격도야를 그린 시 작품과 뛰어난 재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그림, 초서, 자수 작품들을 남겼다.

2. 결혼과 가정생활

2.1. 19세의 결혼

1616년(광해군 8년), 장계향 19세에 재령 이씨(載寧李氏)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과 결혼했다.

이시명은 장계향보다 8세 연상이었다. 이시명의 자는 진보(晉甫), 호는 석계(石溪)다. 영천 이씨 이정(李楨)의 9세손으로, 아버지 이의백(李宜白)은 광해군 때 현감을 지냈다. 이시명은 장계향의 아버지 장흥효의 제자였다.

하지만 이시명은 이미 전처를 두었던 사람이었다. 전처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전처가 사망하여, 장계향은 계실(繼室), 즉 후처로 시집을 간 것이다. 조선시대 계실은 쉬운 위치가 아니었다. 전처 소생 자식을 친자식처럼 돌봐야 했고, 시댁 어른들도 전처와 비교했다. 하지만 장계향은 이 어려운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2.2. 10남매를 키운 어머니

장계향은 전처 소생 1남 1녀와 자신이 낳은 6남 2녀, 총 10명의 자녀를 모두 훌륭히 양육했다. 자애로움과 엄격함으로 자녀들을 훈도했다. 특히 자신의 소생 중 세 아들을 친정 아버지 장흥효에게 보내 학문을 익히도록 했다. 이는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고, 아들들은 할아버지 밑에서 학문의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장계향의 아들들:

장남 이상일(李相一, 1617〜1676): 성균관 생원

차남 이휘일(李徽一, 1619〜1672): 가선대부

삼남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이조판서, 갈암(葛庵)으로 불림

나머지 아들들도 모두 학자로 성장, 특히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은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로, 산림(山林)으로 불림을 받아 이조판서를 지냈다. 법전에 따라 어머니 장계향에게 정부인(貞夫人)의 품계가 내려졌다.

2.3. 태교부터 철저했던 교육

기록에 의하면 장계향은 회임(懷妊, 임신)함에 언행을 옛 법도대로 했다. 태교를 철저히 한 것이다. 임신 중에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나쁜 말을 듣지 않았으며, 바르지 못한 것을 보지 않았다.

아들들이 성장하여 재능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장계향을 칭찬했다. 재령 이씨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장계향은 자식들이 자만에 빠질까 염려했다. "너희들이 글 잘한다는 명성은 있으나, 나는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선생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기뻐할 따름이다."

장계향은 자식들의 학문적 성취보다 인격적 수양을 더 중시했다. 자식들의 행동거지를 끊임없이 경계했다.

2.4. 부부가 손님처럼

장계향과 이시명 부부는 서로를 손님처럼, 동지로서 공경하며 살았다고 전한다. 남편은 아내의 재능을 존중했고, 아내는 남편의 학문을 내조했다. 이시명은 학자로서 제자를 가르치고 책을 읽는 데 집중했다. 집안 살림과 자녀 교육은 대부분 장계향의 몫이었다.

하지만 장계향은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했다. 부부는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의 석계고택에서 살았다. 이곳은 일자형 건물로 검소하게 건축된 양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한 한옥이다.

3. 『음식디미방』의 탄생

3.1. 73세, 눈이 어두운 중에도

1670년(현종 11년) 여름, 장계향 73세 때의 일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졌지만, 장계향은 붓을 들었다. 후손들을 위해 평생 익히고 배운 음식 조리법을 기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장계향은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절대로 내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마라."

몸이 불편한 가운데 어두운 눈으로 간신히 이 책을 쓴 뜻을 잘 알아서 이대로 시행하고, 책은 본가에 간수하여 오래 전하라는 당부였다.

3.2. 음식디미방의 구성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고어에서는 '지' 발음을 '디'로 했다. 한자로는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이 정확하지만, 장계향은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썼다.

책 표지에는 한자로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라 쓰여 있다.

'규곤'은 여성이 거처하는 안방과 안뜰을 말하고, '시의방'은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이라는 뜻이다.

즉 '여성에게 필요한 것을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이라는 의미다.

표지 서명은 아마도 남편 이시명이나 아들 이현일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책의 격식을 갖추고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권두(卷頭)에 쓰인 서명은 장계향이 직접 쓴 '음식디미방'이다.

음식디미방의 표지 - &quot;규곤시의방&quot; (위키피디아)
음식디미방의 표지 - "규곤시의방" (위키피디아)

3.3. 146가지 조리법 구성

『음식디미방』에는 총 146가지의 조리법이 실려 있으며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있다.

3.3.1. 주식

① 국수 : 면, 난면, 메밀국수, 녹말국수

② 만두류 : 만두, 메릴만두, 어만두, 숭어만두, 수교의, 석류탕

3.3.2. 부식

① 국 : 족탕, 말린 고기탕, 쑥탕, 천어순어탕, 붕어순갱, 와각탕, 난탕법, 계란탕법, 양숙편, 전복탕, 자라갱

② 찜 : 붕어찜, 해삼찜, 개장찜, 수증계, 가지찜, 외찜

③ 편육(片肉), 또는 숙편(熟片) : 양숙, 별미 닭대구편

④ 선(膳) : 동아선

⑤ 채 : 연근채, 동아돈채, 잡채, 대구껍질채, 외화채

⑥ 누르미(고기,생선,채소 등을 구운다음 장에 밀가루, 맛국물을 넣어 끓인즙을 끼얹어 내는 음식) : 가지누르미, 개장고지누르미, 동아누르미, 대구누르미, 개장누르미, 해삼누르미

⑦ 구이 : 닭구이, 가제육, 웅장, 대합구이

⑧ 볶이 : 양볶이, 꿩지히, 꿩짠지히

⑨ 적 : 동아적, 연근적

⑩ 전 : 어전법

⑪ 회 : 회, 대합회

⑫ 침채 : 꿩침채, 산갓침채, 마늘 담는 법

⑬ 순대 : 개장

⑭ 젓 : 게젓, 약게젓, 청어 염해법, 방어 염장법

⑮ 삶는 법 : 질긴 고기 삶는 법, 누른개, 웅창 손질법, 개장 고는 법, 해삼 다루는 법

3.3.3. 양념

① 식초 : 2가지 초법, 매자초, 국에 타는 법

3.3.4. 후식

① 떡 : 상화(霜花), 상화편, 증편, 석이편, 잡과편, 밤설기, 전화법, 빈자법, 인절미 굽는 법

② 잡과 : 연약과, 약과, 박산, 중박계, 빙사과, 강정

③ 기타 : 앵도편, 순정과, 죽순정과, 섭산삼

④ 화채 : 토장법 녹두나화, 챠ㄱ면(오미자), 벽챠ㄱ면, 차면, 스ㅣㅡㆀ면(오미자)

원문의 주요 표기 (현대 학계에서 통용되는 재현)

* 챠ㄱ면(오미자): 오미자를 국물로 쓴 면 화채이다.

* 벽챠ㄱ면: 벽은 푸른색을 의미하므로, 푸른색을 띠는 재료(쑥이나 시금치 같은)를 이용한 면 화채로 추정된다.

* 차면 (茶麵): 차(차)처럼 마시는 면이라는 의미로, 국수 화채의 일종이다.

* 스ㅣㅡㆀ면(오미자): 이 화채는 현대어로 '싀면' 또는 '시의면(饎儀麵)'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녹말을 이용해 만든 면을 오미자 국물에 띄워 먹는 음청류이다.

3.3.5. 저장

① 채소 : 수박, 동화 간수법, 동화 담는 법, 가지 간수법, 고사리 담는 법, 비시나물 쓰는 법, 건강법

② 과일 : 북숭아 간수법

③ 고기 : 고기 말리는 법, 고기 말려 오래 두는 법, 참새 말리는 법

④ 생선 : 생선 말리는 법, 전복 말리기, 해삼 말리기, 생복 간수법, 연어란

3.3.6. 술

① 단양주 : 정감청주, 점감주, 2가지 하절 삼일주, 일일주, 하절주, 4가지 이화주, 사급주

② 이양주 : 감향주, 하향주, 벽향주, 유화주, 향온주, 소곡주, 황금주, 하시주, 칠일주, 백화주, 동양주, 점주, 적주, 남성주, 녹화주, 칠일주, 죽엽주, 별주, 행화춘주

③ 삼양주 : 2가지 삼해주, 2가지 삼해주, 삼오주 (삼양주), 순향주법

④ 사양주 : 삼오주 (사양주)

⑤ 약용주 : 차주법, 송화주, 오가피주

⑥ 혼향주 : 과하주

⑦ 소주 : 2가지 수주, 밀소주, 찹쌀소주

⑧ 누룩 : 주국방법, 이화주 누룩법

특히 주목할 만 한 점들 :

고려 말 발효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됨.

녹말·녹두가루·메밀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국수.

훈연법에 의한 고기 저장법.

51종의 술 빚는 방법 (감향주, 이화주 등).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음 (당시 경상북도 지방에 아직 고추가 전파되지 않음).

3.4.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서술

『음식디미방』의 조리법 서술은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장계향은 오랫동안의 조리 경험을 바탕으로 섬세하면서도 꼼꼼하게 저술했다.

예를 들어 '산병(散餠, 찹쌀가루로 만든 떡)' 조리법:

"찹쌀가루를 체에 곱게 쳐서 꿀물을 넣어 반죽하되 되게 말고 무르게 하라. 대추, 밤, 잣을 다져 넣고 기름에 지지라. 꿀을 바르고 잣가루를 뿌리라."

재료의 양, 불의 세기, 조리 시간, 순서 등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과학적 조리서였다.

3.5. 한글 필사의 아름다움

『음식디미방』의 한글 글씨는 견실한 서체가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다. 장계향은 초서의 달인이었지만, 이 책은 후손들이 읽기 쉽도록 정자에 가까운 한글로 썼다.

총 30장의 필사본으로, 앞뒤 표지 두 장을 포함한다. 장계향의 필치는 단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명확하다. 73세의 노구에, 눈이 어두운 중에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쓴 흔적이 역력하다.

4. 나눔을 실천한 삶

4.1. 300명의 걸인을 먹이다

장계향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남달랐다. 대문 밖에 큰 솥을 걸고 죽을 쑤어 300명이나 되는 걸인들을 먹였다고 전한다.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여파로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특히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 걸인이 되어 떠돌았다.

장계향은 자신의 집이 부유하지 않았지만, 가진 것을 나누었다. 매일 대문 밖에서 죽을 쑤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유교적 애민정신의 실천이었다.

4.2. 교육과 애민의 정신

장계향이 『음식디미방』을 쓴 이유는 단순히 조리법을 전수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 내심에는 교육과 애민(愛民)의 정신이 깔려 있었다.

장계향은 『중용』과 『춘추좌전』을 응용하여 이 책을 저술했다.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유교적 이상을 담은 실학서였다.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이다.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여성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장계향은 이러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고, 그 지식을 후대에 전했다.

4.3. 퇴계 학파의 숨은 공신

장계향은 셋째 아들 이현일을 비롯하여 여러 아들을 훌륭한 학자로 키웠다. 이들은 모두 퇴계 학파의 학통을 이었고, 조선 후기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후세는 장계향을 "퇴계 학파의 숨은 공신"이라 평가했다. 남성 학자들이 학문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한 여성들 덕분이었다.

또한 "맹자의 어머니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왔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하다. 장계향도 10남매를 훌륭히 키워 맹모에 비견되었다.

5. 역사적 재평가

5.1. 한국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은 한국 최초의 한글 요리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2015년과 2017년에 더 이른 시기의 한글 조리서인 『최씨음식법』, 『주초침저방』 등이 발견되었으나, 『최씨음식법』은 내용의 일부만 전하고, 『주초침저방』은 한문이 주이고 한글은 보조적이다.

따라서 완전한 형태의 한글 요리책으로는 『음식디미방』이 최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라는 점이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요리책이 있었지만, 모두 남성이 썼다. 여성이 요리책을 쓴 것은 『음식디미방』이 최초다. 이는 세계 음식 문화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5.2. 음식으로만 기억되는 아쉬움

장계향은 시·서·화에 모두 뛰어난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 초서의 달인이었고, 시와 그림에도 능했다. 10남매를 훌륭히 키운 교육자였고, 300명의 걸인을 먹인 사회사업가였다.

하지만 오늘날 장계향은 주로 『음식디미방』의 저자로만 기억된다. 이는 여성을 음식과 육아에만 한정하는 편견의 결과일 수 있다.

물론 『음식디미방』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다. 하지만 장계향의 삶 전체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라, 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예술가이자 사회사업가였다.

5.3. 신사임당과의 비교

현대 한국인은 조선의 대표적인 어머니로 신사임당을 연상한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집안과 집밖에서 장계향보다 뚜렷한 업적과 성취를 이루어낸 조선의 여성은 없는 듯하다"고 평가한다.

신사임당 (1504〜1551):

예술가 (그림, 자수)

4남 3녀

율곡 이이의 어머니

48세 사망

장계향 (1598〜1680):

학자, 교육자, 예술가, 요리 연구가

10남매 (전처 자녀 포함)

이현일의 어머니

『음식디미방』 저술

300명 걸인 구휼

83세 장수

효녀로서, 현모양처로서, 이웃을 위한 봉사의 실천자로서, 서화가로서 장계향이 이룬 성취는 그 예를 달리 찾기 어렵다.

하지만 신사임당보다 덜 알려진 것은, 장계향이 오랫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5.4. 불천위로 모셔진 여성

장계향은 재령 이씨 문중에서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진다. 불천위란 신주를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보통 4대까지만 제사를 지내지만, 특별한 공덕이 있는 조상은 불천위로 영구히 모신다.

조선시대 여성이 불천위로 모셔진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이는 장계향의 업적과 덕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장계향의 불천위 신주의 후신 함중(後身 陷中)에는 '장계향(張桂香)'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여성의 이름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았지만, 장계향의 실명은 신주에 명확히 기록되었다. 이는 그녀의 삶이 후대의 귀감이 된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5.5. 현대적 의미

장계향의 삶은 현대 여성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첫째, 여성도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다. 장계향은 예술가, 학자, 교육자, 사회사업가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

둘째, 지식과 경험은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해야 한다. 『음식디미방』은 350년이 지난 지금도 귀중한 자료다.

셋째, 나눔과 봉사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장계향의 애민정신은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동시에 비판적 시각도 필요하다. 장계향이 10남매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며 걸인을 구휼한 것은 훌륭하지만, 이것이 모든 여성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6. 죽음과 유산

6.1. 83세의 장수

장계향은 1680년(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에서 타계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장수한 것이다. 평균 수명이 40〜50세였던 시대에 83세까지 산 것은 건강 관리를 잘한 덕분이기도 하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한 덕분이기도 했다.

묘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근처에 있다. 남편 이시명과 함께 묻혔다.

6.2. 후손들의 노력

장계향의 바람대로, 후손들은 『음식디미방』을 잘 보존했다. 원본은 경북대학교 도서관 고서실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급 자료로 평가받는다.

1980년 황혜성이 『규곤시의방 해설본』을 출간하면서 『음식디미방』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9년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다시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을 출간하였고, 2011년에는 경북대학교에서 『음식디미방』을 출간하였다.

2000년대 들어 영양군은 장계향과 『음식디미방』을 지역의 문화 콘텐츠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6.3.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2015년 영양군은 석보면 두들마을에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을 건립했다.

이곳에서는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음식들을 재현해 전시하고, 조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정부인상(貞夫人床)' 체험이 인기다. 『음식디미방』의 음식들을 재현하여 방문객들이 직접 맛볼 수 있다. 감향주, 이화주 등 전통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2017년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건너편에 장계향 기념관이 개관했다. 장계향의 생애와 업적, 『음식디미방』의 가치를 전시하고 있다.

6.4. 문화 콘텐츠화

2019년 영양군은 '장계향 한글 음식 디미방 축제'를 시작했다. 매년 가을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음식디미방』의 음식을 재현하고, 전통 조리법 시연, 음식 만들기 체험 등이 진행된다.

2020년 KBS는 다큐멘터리 '장계향, 음식디미방을 쓰다'를 방영했다. 장계향의 생애와 『음식디미방』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2021년 문화재청은 『음식디미방』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글 조리서로서의 가치, 음식 문화사적 의미, 여성 저술서로서의 의의 등이 인정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계향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제작을 제안하고 있다. 신사임당이 드라마화된 것처럼, 장계향도 대중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진다면 전통문화의 창달이나 K-Culture의 전수나 보급이라는 측면에서도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6.5. 21세기의 재발견

장계향은 오랫동안 학계에서만 연구되는 인물이었다.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2015년 영양군의 적극적인 홍보로 장계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음식디미방』을 소재로 한 관광 상품이 개발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영양을 찾았다.

2020년 코로나19로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음식디미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전통 음식에 대한 관심, 한글 조리서의 가치 재발견, 여성 저술가에 대한 관심 등이 맞물려 장계향이 재조명되었다. 학계에서는 장계향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음식학, 한글학, 여성학, 교육학, 역사학 등 여러 분야에서 장계향 연구가 진행 중이다.

마무리

장계향은 조선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여성으로, 73세에 눈이 어두운 중에도 146가지 조리법을 한글로 기록했고, 10남매를 훌륭히 키워 셋째 아들 이현일은 이조판서가 되어 정부인에 봉작되었다.

시·서·화에 뛰어났고 초서의 달인이었으며 300명의 걸인을 먹이는 나눔을 실천했지만, 주로 음식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쉽다. 신사임당보다 덜 알려졌다는 것이 오히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지만 다재다능한 업적으로 재령 이씨 문중에서 불천위로 모셨으며, 21세기 들어 영양군의 문화 콘텐츠로 재조명되는 것은 다행이라 생각된다.

문헌 출처

<1차 사료 (정사 및 문집)>

1. 장계향,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1670년 필사본

2. 장계향, 『전가보첩(傳家寶帖)』

3. 이현일, 『갈암집(葛庵集)』

4. 이시명, 『석계집(石溪集)』

5. 장흥효, 『경당유고(敬堂遺稿)』

6. 『숙종실록(肅宗實錄)』

<2차 사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계향(張桂香)" 항목,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항목

3. 경북대학교 도서관, 『음식디미방』 원본 소장

4. 황혜성, 『규곤시의방 해설본』, 1980

5. 궁중음식연구원, 『다시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 1999

6. 정양완, 『음식디미방 역주』, 2003

7. 이효지, 「장계향과 음식디미방 연구」,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10, 1995

8. 강인희, 「조선시대 음식문화와 장계향」, 『식품과학』 28, 1996

9. 윤숙자, 「음식디미방의 조리학적 분석」, 『한국조리학회지』 5, 1999

10. 김상보, 「장계향의 생애와 업적」, 『한국인물사연구』 8, 2007

11. 정지영, 「음식디미방의 한글학적 가치」, 『한글학회 학술대회』, 2010

12. 송지원, 「장계향의 여성 리더십 연구」, 『한국여성학』 29, 2013

13. 이혜순, 「장계향: 음식으로만 기억되는 아쉬움」, 『여성문학연구』 38, 2016

14. 영양군,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자료집』, 2015

15. 영양군청, "장계향 한글 음식 디미방 축제", 2019-2023

16. KBS, 다큐멘터리 '장계향, 음식디미방을 쓰다', 2020

17. 문화재청, "음식디미방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검토", 2021

18. 김영숙, 「17세기 여성의 지식 체계: 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32, 2019

19. 박혜숙, 「장계향과 신사임당의 비교 연구」, 『역사와 현실』 115, 2020

20. Jang, Gyehyang, "Eumsik Dimibang", Korean Traditional Food Research, 2015

21. Lee, Hyeonil, "My Mother, Lady Jang", Joseon Dynasty Memoir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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