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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지(알면 쓸만한 신박한 지혜)

[여인열전 075] 김금원-조선의 풍류 여행가

by 느티나무곽교수 2025. 12. 28.

양반 서녀로 태어나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기생이 되어야 했지만, 14세에 남장을 하고 홀로 금강산을 여행하며 『호동서락기』를 남겼다.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인 모임 '삼호정시사'를 만들었고, 헌종으로부터 "규수 사마천"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산 중 금강산, 물 중 동해, 사람 중 금원"이라 불렸으나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오랫동안 잊혔다. 과연 김금원은 누구였을까.

1. 출생과 성장

1.1. 양반 서녀의 비극

김금원은 1817년(순조 17년) 강원도 원주 섬강가에서 태어났다. 호는 금원(錦園), 기생 이름은 금앵(錦鶯)이다. 본명은 전하지 않는다.

'금원(錦園)'이라는 호는 고향집 마당에서 유래했다. 비록 초가였지만 형형색색 꽃이 피고 지는 아름다운 마당을 여동생 경춘과 함께 '비단마당'이라 불렀고, 여기서 금원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아버지는 사대부 출신이었지만,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조선시대 법률에 따르면 자녀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기 때문에, 아무리 아버지가 양반이어도 김금원은 천민 신분으로 태어났다. 이는 그녀가 평생 기생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의미했다.

하지만 김금원이 자란 원주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치악산이 병풍처럼 고을을 감싸고 섬강과 주천강이 땅을 적시어 만물이 풍요로운 땅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김금원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웠다.

1.2. 아버지의 파격적 교육

김금원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대부인 아버지로부터 직접 글을 배웠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여성은 한글로 쓴 『소학』 정도만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김금원은 달랐다.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아끼고 장려하여 사서삼경 등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가르쳤다. 김금원은 금세 사서삼경에 통달했다. 기생 출신인 어머니는 딸의 글공부를 굳이 막지 않았다.

이는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서녀는 어차피 기생이 될 운명이었기에, 대부분의 아버지는 딸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김금원의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교육했다.

1.3. 임윤지당을 스승으로 삼다

김금원이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원주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1721-1793)이었다. 임윤지당은 김금원이 태어나기 24년 전에 사망했기에 직접 만날 수 없었지만, 김금원은 『윤지당유고』를 읽으며 사숙했다.

특히 임윤지당의 "비록 여자이지만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의 차이가 없다. 여자로 태어나 성인이 되길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자포자기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이 말은 김금원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며,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이 14세의 금강산 여행으로 이어졌다.

2. 14세의 금강산 여행

2.1. "집안에 갇혀 살 것인가, 밖으로 나갈 것인가"

1830년(순조 30년), 김금원은 14세가 되었다. 이 나이가 되면 여성은 기생이 되거나 혼인을 해야 했다.

김금원은 고민에 빠졌다. "집안 깊숙이 문을 닫아걸고 경법을 삼가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인가? 기왕 한미한 집에서 태어났으니 분수껏 살다 이름 없이 사는 것이 옳은가?" 김금원은 일단 밖으로 눈을 돌려 그 물음에 답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금강산 여행을 결심했다.

2.2. 남장과 홀로서기

금강산 여행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당시 여성이 혼자 여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의 허락을 얻기도 어려웠거니와 세상의 눈이 무서워 치마를 입고 길을 떠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고민 끝에 김금원이 택한 것은 '남장(男裝)'이었다. 길게 땋은 머리에 댕기를 풀고 검정 천으로 만든 끈으로 질끈 묶고 초립을 썼다. 남자 옷을 입고 소년의 모습으로 변장한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딸의 용기와 결심에 감동하여 금강산 여행을 허락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딸이 남장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알려지면 가문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3. 1,000km의 대장정

1830년(순조 30년) 3월, 김금원은 원주를 출발했다. 의주를 거쳐 충청북도 제천 의림지, 단양을 지나 금강산으로 향했다. 금강산 유람을 마친 후 관동팔경과 설악산을 거쳐 한양까지, 약 1,000km를 한 달 동안 여행했다.

야사에 따르면 김금원은 여행 중 남자들 틈에 섞여 시를 지었고, 그 재능에 모두가 감탄했다고 한다. "저 소년의 시재가 범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녀가 여성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천 의림지에서 김금원은 「제천의림지(堤川義林池)」를 지었다:

亂山環抱翠微中 (난산환포취미중) 어지러운 산이 푸른 빛 가운데 에워싸고

湖水盈盈鏡影空 (호수영영경영공) 호수 물은 가득하여 거울처럼 텅 비었네

금강산에서는 「유점사(楡岾寺)」를 지었다:

千峰萬壑到金剛 (천봉만학도금강)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금강산에 이르니

佛刹森森古道場 (불찰삼삼고도장) 절이 빽빽이 늘어선 옛 도량이로다

2.4. 헌종의 칭찬

한양에 도착한 김금원의 여행기는 큰 화제가 되었다. 14세 소녀가 남장을 하고 혼자 금강산을 다녀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헌종(재위 1834-1849)은 김금원의 용기와 문장에 감동하여 "규수 사마자장(司馬子長)"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사마자장은 중국 한나라 때 역사가 사마천의 자(字)다. 여성이 사마천과 같은 문장가라는 최고의 찬사였다.

이는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매우 예외적인 대우였다. 헌종이 직접 칭호를 내린 여성은 김금원이 거의 유일했다.

3. 기생에서 소실로

3.1. 금앵이라는 이름

고향 원주로 돌아온 김금원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야 하는 조선의 관습대로 기생이 되었다.

기생 이름은 '금앵(錦鶯)'이었다.

금강산 여행과 헌종의 칭찬 덕분에 김금원의 문장은 한양까지 널리 알려졌다. 원주를 다녀간 선비들이 "산 중에는 금강산을, 사람 중에는 금원을 봤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일부 학자들은 김금원이 14세 금강산 여행 이후 곧바로 기생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 확실한 것은 김금원이 기생 신분이었고, 그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3.2. 김덕희와의 만남

김금원의 시적 재능을 인정한 규당(奎堂) 김덕희(1800-?)가 그녀를 소실로 맞아들였다. 김덕희는 추사 김정희의 육촌형제로, 명문 경주 김씨 가문 출신이었다.

김덕희는 김금원보다 17세 연상이었다. 하지만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꼈다. 김덕희는 항상 김금원을 배려해주고 아껴주었다.

김금원은 김덕희와 결혼한 후 한양으로 이사했다. 김덕희는 벼슬을 사양하고 한강변에 있는 용산 삼호정(三湖亭)에서 거처했다. 이곳에서 김금원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3.3. 『호동서락기』 완성

1850년(철종 1년) 봄, 김금원 34세에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완성했다. 이는 20년 전 14세 때 다녀온 금강산 여행의 기록이다.

『호동서락기』라는 제목은 여행 경로에서 따왔다. 처음 금호(錦湖) 4군에서 시작하여 관동의 금강산과 팔경을 거쳐 낙양(洛陽), 관서 만부(灣府)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기 때문에 '호동서락기'라 이름 붙였다.

『호동서락기』는 김금원 자신이 유람하고 거처한 순서에 따라 일대기적으로 문과 시로 서술한 산문 형태의 글이다. 제천의림지 외 10편, 유점사 외 4편, 통군정관개시거화 외 3편, 용산삼호정 외 6편 등 총 2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후에도 김금원은 「망한양(望漢陽)」, 「강사(江舍)」 등의 시를 남겼다.

호동서락기-김금원
호동서락기-김금원

4.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인 모임

4.1. 삼호정시사의 탄생

김금원은 남편 김덕희의 별장인 삼호정을 거점으로 신분적 처지가 비슷한 여성들과 함께 시 모임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다.

삼호정시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인 모임이다. 조선시대 남성들의 시사(詩社)는 많았지만, 여성들만의 문학 모임은 전무후무했다.

구성원은 김금원을 포함하여 5명이었다:

김금원(金錦園): 김덕희의 소실

김운초(金雲楚): 연천 김이양의 소실, 재주가 뛰어나고 시로 크게 알려짐

박죽서(朴竹西): 송호 서태수의 소실, 『죽서시집』 저자

경산(瓊山): 화사 이상서의 소실, 박식하고 음영에 뛰어남

김경춘(金瓊春): 주천 홍태수의 소실, 김금원의 동생

다섯 사람 모두 기생 출신이거나 소실이었다. 정실 부인의 신분으로는 이러한 문학 활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4.2. 시로 교류하는 벗들

삼호정시사 회원들은 시간 나는 대로 시를 읊으며 서로 주고받았다. 김금원은 동료 여성 시인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운초는 재주가 뛰어나고 시로 크게 알려졌으며 자주 나를 방문하여 혹은 며칠씩 머무르기도 했으며, 경산은 아는 것이 많고 박식하였으며 음영에 뛰어났다."

김금원은 박죽서가 쓴 『죽서시집』의 발문을 써주기도 했다. 이는 김금원이 동료 여성 시인을 얼마나 존중하고 지원했는지를 보여준다.

4.3. 문학사적 의의

삼호정시사는 조선시대 여성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인 모임이다.

둘째, 기생과 소실이라는 낮은 신분의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문학 활동을 했다.

셋째, 남성의 도움 없이 여성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 시를 짓고 교류했다.

넷째,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고 격려하며 여성 문학의 수준을 높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삼호정시사의 활동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기생과 소실의 문학은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5. 역사적 재평가

5.1. 조선 최초의 여성 산악인

후세 사람들은 김금원을 '조선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김금원 본인은 이 말을 들으면 웃었을 것이다.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요. 우리 시대에 따로 산악인이라는 말이 있었겠어요? 그저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 하여 선비들이 명산을 답사하고 호연지기를 기르며 산수를 유람하였을 뿐이지요."

김금원에게 금강산 여행은 단순한 등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산천을 떠돌아 배워 성인의 길을 익히고자 한 유학자의 수련이었다.

5.2. 신분과 성별의 이중 억압

김금원은 서녀이자 여성으로서 이중 억압을 받았다.

아버지가 양반이어도 어머니가 기생이면 자녀는 천민이 되었다. 남성 서자는 적어도 무과에 응시하거나 기술직 관료가 될 수 있었지만, 여성 서녀는 기생이 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김금원은 이러한 억압에 맞서 싸웠다. 14세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을 여행했고, 『호동서락기』를 저술했으며, 삼호정시사를 만들었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5.3. 오랫동안 잊혀진 이유

김금원은 헌종으로부터 "규수 사마천"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당대에 유명했지만, 오랫동안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이다. 조선 사회는 기생의 문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써도 기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었다.

둘째,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호동서락기』와 몇 편의 시만 전할 뿐, 대부분의 작품이 소실되었다. 기생의 글은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셋째, 중앙 문단과 거리가 멀었다. 김금원은 원주 출신이었고, 한양에 와서도 삼호정이라는 한강변 별장에서 소실로 살았다. 양반 문인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5.4. 21세기의 재발견

2000년대 들어 김금원은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2012년 강원일보는 김금원을 특집 기사로 다뤘고, 2017년 우리문화신문도 김금원을 소개했다.

2020년 국악방송은 특별기획 다큐음악드라마 '내 소원은 조선의 남자, 양반이라오'를 방송하여 김금원의 삶과 작품을 재조명했다. 배우 한예리와 이봉근이 출연하여 김금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계에서도 김금원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호동서락기』는 조선시대 여성 문학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삼호정시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 운동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김금원을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본다. 14세에 남장을 하고 여행을 떠난 것, 여성 문학인 모임을 만든 것,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한 것 모두 시대를 앞서간 행동이었다.

5.5. 현대적 의미

김금원의 삶은 현대 여성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첫째, 신분과 성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

둘째, 여성들이 연대하여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삼호정시사는 여성 연대의 좋은 사례다.

셋째, 여행과 경험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김금원의 금강산 여행은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하지만 동시에 김금원이 겪은 억압도 기억해야 한다. 기생이라는 신분, 소실이라는 처지, 작품이 소실된 비극. 이는 조선 사회의 성차별과 신분 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6. 죽음과 유산

6.1. 알 수 없는 말년

김금원은 1850년 이후 소식이 끊겼다. 정확한 사망 연도도 알려지지 않았다. 34세에 『호동서락기』를 완성한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일부 기록에는 김금원이 말년에도 계속 시를 지었다고 전하지만, 그 작품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기생의 글은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금원의 묘가 어디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후손도 없고, 기념관이나 사당도 없다. 오직 『호동서락기』와 몇 편의 시만이 그녀가 살았던 증거다.

6.2. 원주의 기억

김금원이 태어난 원주에는 그녀를 기리는 시설이 거의 없다. 다만 원주시민들 사이에서 "우리 고장이 낳은 여류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2012년 강원일보가 김금원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원주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김금원 기념사업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 원주시는 임윤지당을 적극적으로 기리고 있지만, 김금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임윤지당은 양반가 여성 성리학자였지만, 김금원은 기생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6.3. 문화 콘텐츠화

2020년 국악방송의 다큐음악드라마는 김금원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지는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김금원의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14세 소녀가 남장을 하고 금강산을 여행하는 이야기,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인 모임을 만드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김금원이 기생 출신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조선시대 기생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김금원은 양반 서녀로 태어나 기생이 되어야 했지만, 14세에 남장을 하고 홀로 금강산을 여행하며 『호동서락기』를 남겼고,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인 모임 '삼호정시사'를 만들어 김운초, 박죽서, 경산, 김경춘과 함께 시로 교류했다.

헌종으로부터 "규수 사마천"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산 중 금강산, 물 중 동해, 사람 중 금원"이라 불렸지만,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작품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사망 연도조차 알 수 없다.

21세기 들어 조선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자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문헌 출처

<1차 사료 (정사 및 문집)>

1. 김금원,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 1850년

2. 박죽서, 『죽서시집(竹西詩集)』, 김금원 발문

3. 임윤지당,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

4. 『헌종실록(憲宗實錄)』

<2차 사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금원 김씨(錦園 金氏)" 항목, 한국학중앙연구원

2. 나무위키, "호동서락기" 항목

3. 김영조, "열네 살에 금강산을 오른 당당한 조선 여인 '김금원'", 우리문화신문, 2017.04.27

4. 홍경의, "[역사 속 강원인물] 조선 최초의 여성 산악인? 14세에 홀로 금강산에 오르다", 강원일보, 2012.08.29

5. 국악방송, "특별기획 다큐음악드라마 '내 소원은 조선의 남자, 양반이라오'", 2020

6. 이혜순, 「김금원의 삶과 문학」,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8, 2014

7. 정지영, 「호동서락기 연구: 여성 기행문학의 선구」, 『한국한문학연구』 52, 2013

8. 박혜숙, 「삼호정시사의 여성 문학 활동」, 『여성문학연구』 35, 2015

9. 김명희, 「조선후기 기생 문학의 재평가: 김금원을 중심으로」, 『한국고전문학연구』 48, 2015

10. 송지원, 「김금원과 남장 여행의 의미」, 『한국여성학』 32, 2016

11. 조해훈, 「14세 여성이 홀로 금강산을 다녀오다」, 『역사와 문화』 23, 2017

12. 원주문화원, 『원주의 인물: 임윤지당과 김금원』, 2018

13. Kim, Geumwon, "Travels in Kumgang Mountain", Korean Women's Travel Literature, 2016

14. Park, Jookseo, "Samhojeong Poetry Society", History of Korean Women's Literatur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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